젠더특보, 여가부 장관의 임무

입력
2020.07.19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자체 최초의 서울시 젠더 특별보좌관은 성평등 시정(市政), 여성 이슈 조언을 위해 마련된 자리다. 지금 임순영 젠더 특보는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 피소 사실 또는 ‘불미스러운 일’을 박 시장에게 보고하고 대책을 논의한 인물로 지목된다. 박 시장의 성추행 혐의와 서울시 대응이 논란이 됐으나 그는 의혹을 밝히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휴가를 내 언론을 피하고 사의를 표명했다가 반려당했다. 과연 젠더특보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여겼는지 의아할 뿐이다.

□ 임무 방기로 비판받는 또 다른 이는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다. 여가부는 14일에야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겠다는 소극적 입장을 표명했다. 이 장관은 17일 여성폭력방지위원회 ‘긴급’ 회의를 열고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뒷북을 쳤다.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태 때도 침묵했다. 2018년 정현백 장관 시절 여가부가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 성폭행 폭로 다음날 충남도 특별점검, 재발방지대책 수립 요구, 2차 피해 방지대책 등 입장을 발표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 여성가족부 해체, 여가부 장관 경질 요구는 사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청소년 게임 셧다운제(게임 시간 선택제), 군복무자 가산점제 폐지 등에 분노한 이들이 여가부에 책임을 묻곤 했다. 정 전 장관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2017년 행정관으로 임명될 때 성 인지 감수성 논란으로 경질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가 자신이 경질 국민청원 대상이 됐다. 과거와 달라진 것은 지금의 ‘여가부 해체론’이 여성인권과 성평등에 무책임하다는 정반대 이유에서 비롯된 점이다.

□ 여가부는 국가기관이 성희롱 방지조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주체다. 젠더특보가 시장의 성비위를 막지 못했다고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나 피해자의 전보 요청이 수차례 묵살되고 최근 서울시 공무원들이 피해자를 압박한 일 등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공적 임무를 방기하는 공직자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도록 만들어 피해 양산에 일조한다. 제 역할을 못하거나 모르는 공직자는 물러나야 옳다. 임 특보는 그 기회조차 상실했으니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는 일만 남았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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