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이 뭐길래… 20년 전부터 이어진 안장 논란

입력
2020.07.18 15:00
친일 인사ㆍ 5ㆍ18 가해자ㆍ민주화인사까지 중심에
전직 대통령도 서울이냐 대전이냐 놓고 옥신각신


국립현충원이 정치권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습니다. 고(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안장 문제로 현충원은 여야, 진보와 보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소가 됐기 때문인데요. 미래통합당은 백 장군이 제1 현충원인 국립서울현충원이 아닌대전현충원(제2 현충원)에 안장되자 "6ㆍ25 전쟁 영웅을 이렇게 홀대하는 게 어딨냐"며 정부ㆍ여당을 비판했습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부는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 자체가 문제라며 '친일파 파묘' 주장을 펼쳤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간도특설대에 가담해 독립군 토벌에 나서는 등 과거 친일 행적을 문제 삼은 거죠. 안장 지역이 '서울이냐 대전이냐'를 두고 불거진 '백선엽 논란'이 친일파 파묘로 확장된 겁니다.

입장 변화는 없다는 정부의 방침에도 보수 시민단체와 예비역들은 백 장군의 서울현충원 안장을 주장하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진보 시민단체'지역이 어디든 백 장군을 현충원에 안장해선 안 된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대체 '현충원 안장'이 어떤 의미를 갖길래 정치권이 이렇게까지 시끄러운 걸까요.

1999년 '제정구 안장' 문제로 정치권ㆍ국방부 충돌

사실 현충원 안장 여부를 두고 옥신각신 했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서울현충원은 1996년부터 자리가 꽉 차 늘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1999년 제정구 전 국회의원이 서거한 뒤 제 전 의원의 장지 문제를 두고 국회와 국방부가 충돌했습니다. 한나라당(현 통합당) 출신 의원이지만, 민주화 운동과 빈민퇴치 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고인의 뜻을 기리자며 여야는 이견 없이 현충원 안장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서울현충원 소관 부처인 국방부가 '예외를 둘 순 없다'며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습니다. 당시 제 전 의원의 안장 문제를 두고 그가 1974년 공산주의식 인민혁명을 시도한다며 운동권 학생들을 처벌한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된 걸 문제 삼았다는 얘기가 나왔죠. 제 전 의원은 민청학련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국방부는 이에 "해당 사실과 안장 문제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죠. 제 전 의원의 안장 불가 결정은 현충원 내부 공간 제한 때문이라는 게 당시 국방부의 설명이었습니다.


19년 전에도 친일 인사 논란… 2011년 신군부 핵심 안현태 기습 안장도

백 장군과 비슷한 사례는 19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2001년은 친일 인사에 포함된 고 김창룡 전 특무부대장(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안장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 의혹을 받아온 사람입니다.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해 항일세력에 대한 첩보 활동으로 승승장구했죠.

2001년 1월 친일 인사인 김씨가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국방부는 1998년 2월 '경기 안산시 석수동 묘소를 국립묘지로 옮겨 달라'는 김씨 유족의 요청을 받고 대전현충원 장군묘역으로 이장했습니다. 군 당국은 김씨 옛 동료들과 군 장병 등이 참석하는 안장식까지 열었고, 예포를 쏘며 예우를 갖췄습니다. 육군은 논란이 되자 "순직으로 처리돼 있어 현충원 안장에 결격 사유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김씨의 안장을 지원한 국군기무사령부는 "암살 배후 의혹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니 매도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2011년에는 신군부의 핵심 인사이자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의 가해자인 고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의 국립묘지 안장으로 떠들썩했습니다. 보훈처가 그해 8월 5일 안씨의 국립묘지 안장을 의결한 뒤 하루 만에 대전현충원으로 기습 안장을 한 게 발단이 됐습니다. 안씨는 육군사관학교 17기 출신으로, 하나회 소속이었습니다. 1998년 5공 비자금 조성에 관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돼 복역했죠.

문제는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 받은 경우 안장 대상자 제외 여부를 심의해야 한다는 국립묘지 운영 규정이었습니다. 보훈처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데, 베트남 전쟁 때 참전했고 1968년 청와대 침투 무장공비를 사살해 화랑무공훈장을 받는 등 안씨가 국가 안보에 기여했다고 본 겁니다. 또 뇌물혐의로 복역한 전력이 사면됐다는 것도 안장 가능 이유였습니다. 당시 5공 인사의 안장은 유학성 전 의원 이후 안씨가 두 번째였죠

2010년 황장엽 안장 문제 두고 갈라진 보수진영

현충원 안장 문제를 두고 같은 진영에서 논쟁이 벌어진 적도 있습니다. 2010년 10월 정부의 고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국립묘지 안장 방침을 두고 보수진영 내부에서 의견이 나뉘었는데요. 한 쪽에선 북한 체제의 실상과 북한 주민 인권문제를 알리는 데 기여한 만큼 자격이 충분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다른 쪽에선 북한 주체사상의 기반을 마련한 사람을 호국영령과 같은 장소에 놓는다는 게 합당하지 않다며 반발했죠.

안장 문제는 전직 대통령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은 국가원수답게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안장 대상자로 가장 먼저 나오는 데도 말이죠. 2006년에 서거한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은 서울현충원이 만장 상태라 유족들 동의 아래 대전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2004년 조성된 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안장된 첫 번째 대통령이 됐습니다.

반면 2009년 8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이명박 정부는 유족들에게 안장 장소로 대전현충원을 권했습니다. 역시 서울에 자리가 없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유족 측은 대전이 아닌 서울을 원했고, 정부는 서울현충원 묘역을 다시 점검했습니다. 국방부는 청와대에 검토 결과 묘역 4기 정도 추가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청와대는 당시 사후 이명박 대통령도 안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 국방부에 묘지 마련을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상징성 때문에 서울 고집하지만… 대전과 훈격 차이 없어

현충원 안장 문제가 매번 불거지는 건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서울현충원에 더는 묘지를 마련한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1995년 국군묘지로 출발한 서울현충원은 1965면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안장 대상자도 6ㆍ25 전쟁 때 전사한 군인에서 애국지사와 경찰관 및 향토예비군까지 늘었습니다. 서울현충원의 수요 공간이 한계에 이르자 1976년 대전에 제2 현충원 설치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대전현충원은 1985년에 설립됐지만, 안장 대상자가 워낙 많다 보니 6년 뒤면 이곳도 만장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정부는 이에 제3 현충원인 국립연천현충원을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조성하고 있습니다.

온갖 논란 속에서도 유족들이 서울현충원 안장을 고집하는 건, 수도 서울의 상징성은 물론 접근성이 좋아 참배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충원과 국립묘지가 다른 건 현충원의 경우 군을 통솔하는 국방부가 관리한다는 점입니다. 현충원은 국방부가 관할해 온 반면 다른 국립묘지들은 국가보훈처 소관입니다. 다만 관리하는 부처의 지위가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면 실제 차이는 없습니다. 대전현충원의 경우 2006년부터 소관 부처가 보훈처로 바뀌었습니다. 현재 국립묘지 중 서울현충원만 유일하게 국방부가 관리하는 곳이 됐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두 현충원 간 훈격(공훈 종류와 등급) 차이는 없습니다. 보훈처는 1ㆍ2현충원은 물론 조성될 제3 현충원까지 위상은 모두 동일하다는 입장입니다.





류호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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