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놈!! 아, 욕 아닙니다. 프랑스어(si bel homme)로 잘생긴 남자라는 뜻이에요. 행복하세요. 시벨놈~!"
지난주 종영한 MBC 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에서 우도희 역을 맡은 배우 서지혜는 고운 얼굴로 태연하게 '시벨놈'을 내뱉는다. "저 광녀됐어요~ 우광녀~"라며 꽃송이를 흩뿌리는가 하면 "병맛은 죽지 않습니다. 병맛 네버 다이!"를 외치는 B급 감성의 애드리브도 마다하지 않는다. '로코(로맨스코미디) 퀸' 서지혜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평소 도회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매력을 선보였지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16일 서울 신사동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서지혜는 "지금까지 연기했던 차분한 역할과 달리 우도희의 높은 텐션을 유지하는 게 처음에는 힘들었다"면서도 "그런 어색함은 잠시뿐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어서 정말 신나게 연기했다"고 말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의 우도희 캐릭터가 실제 본인 성격과도 비슷하다고 털어놓는다. "친구들은 이제서야 너같은 역할을 하게 됐다면서 예쁜 척 그만하고 너의 '똘끼'를 보여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2003년 SBS 드라마 '올인'으로 데뷔한 서지혜는 벌써 18년차 베테랑 배우다. 2005년 스타 등용문으로 불리는 영화 '여고괴담' 시리즈 '여고괴담4-목소리'와 MBC 드라마 '신돈'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지만, 그뿐이었다. 출중한 외모와 연기력을 갖췄지만 '안 뜨는 게 이상한 배우'로만 꾸준히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절치부심 끝에 '인생 캐릭터'를 만났으니 올해 초 시청률 21.7%를 기록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속 서단 역이다. 서지혜는 세련되고 도도한 북한 여성 서단을 연기하면서 이른바 '서단앓이' 현상까지 일으켰다
사랑의 불시착 종영 후 2주 만에 그는 숨 고를 새도 없이 바로 이 드라마 촬영에 들어갔다. 연기 변신에 대한 갈증과 "(우도희라는) 캐릭터의 힘"만 믿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 동안 지적이고, 도시적인 캐릭터를 많이 맡았어요. 다른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찰나에 이 작품 제안이 들어온 거죠." 일단 반전 매력을 선보이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상대역인 송승헌과의 코믹연기 합도 잘 맞았다.
"평소 애드리브를 하는 편이 아닌데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병맛스러움과 발랄함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전엔 대본대로 연기했다면 이 드라마를 통해 내가 필요한 것들을 조금 더 추가해도 재미있는 연기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전작에서 서단의 연인이었던 구승준 역의 배우 김정현이 첫 회에서 바람 핀 남자친구로 특별출연한 것도 서지혜의 아이디어였다.
그 덕분인지 이 드라마는 첫 방송 6%대 시청률로 순항했지만 뒷심을 발휘하진 못했다.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막을 내린 데 대해 그는 "어떻게 하면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에만 집중하다보니 오히려 시청률에는 신경을 안 썼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30대로 접어들면서 인기나 드라마 흥행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편해졌다는 게 그의 얘기다. 2015년 방영된 SBS 드라마 '펀치'가 전환점이 됐다. 서지혜는 "어릴 때 데뷔를 해서 쉼 없이 일만 했더니 방향을 잃은 시기가 있었다"라며 "연기에 욕심이 생기고, 재미도 붙인 게 펀치를 할 때였다"고 회상했다.
올해만 벌써 2개 작품을 한 만큼 차기작은 천천히 고를 계획이다. 영화 '툼레이더(2001)' 속 앤젤리나 졸리 같은 여전사 역할을 해보고 싶단다. "요즘 유행하는 성격 유형 테스트를 해봤더니 'ENTP'로 나왔어요. 여자라면 치마 두른 남자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짓던 그는 금세 진지한 표정을 되찾았다. "매번 주인공만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어느 순간 엄마, 이모 역할을 할 수도 있고요.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전 주인공하려고 연기하는 게 아니라, 연기가 좋아서 하는 거거든요." 그의 다음 선택이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