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수도권 집값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충 방안으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면서 서울시의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서울시는 “다른 대안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며 시종일관 그린벨트 해제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그린벨트 보호’ 철학이 지켜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15일 서울의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 문제를 포함한 장기적 대책을 범정부 TF 차원에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해제 없이 온전히 보전한다는 것이 서울시의 확고하고 일관된 입장”이라며 즉각 반대 입장을 표했지만, 그린벨트 해제 문제가 수면 위로 거론됐다는 점에서 당정의 분위기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한 고위 관계자는 "박 전 시장이 없어진 상황에서 정부가 밀어붙인다고 해서 쉽게 될 일은 아니다"며 "1,000만 시민이 있고 이를 대표하는 별도의 시의회도 있어 어느 한쪽의 집행부가 결정한다고 기존 서울시 방침이 바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응했다.
그럼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까지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서울의 개발제한구역 면적은 149.13㎢로 서울 전체 면적(605.25㎢)의 24.7%를 차지한다. 서초구가 23.88㎢로 가장 넓고, 강서구(18.92㎢), 노원구(15.9㎢), 은평구(15.21㎢), 강북구(11.67㎢) 등의 순이다.
반면 강북지역 그린벨트는 대부분 산으로 택지개발이 어려운데다 지역별로 선호도가 크게 갈린다. 따라서 그린벨트를 해제해 조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택지는 강남의 보금자리 지구 근처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다만 이들 지역의 그린벨트 가용면적이 그리 충분치 않다는 평가도 있어, 최대한 택지를 조성해도 1만가구 이상 공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 외외 시유지 및 국공유지 개발, 고밀도 개발, 역세권토지개발 등 여러 대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건축ㆍ재개발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부문의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방안도 나올 수 있다. 그린벨트 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수단인 만큼 다른 대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해본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끝까지 그린벨트 해제를 반대할 경우 정부가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 특별조치법 시행령’상 국토교통부 장관이 그린벨트를 해제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어서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장관의 직권으로 해제해도 세부 행정절차는 지자체의 손을 거쳐야 한다”며 “미래 자산인 그린벨트를 흔들림 없이 지키겠다”고 재확인했다.
일각에선 그린벨트 해제 여부 문제로 서정협 권한대행 체제가 얼마나 리더십을 발휘할지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적 기반이 확고한 민선 단체장이 없는 서울시가 그린벨트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과 중앙정부의 외풍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다른 현안에 대해서도 차기 시장이 선출되는 내년 4월까지 9개월간 험난한 길을 걸을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