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리기로 했지만 서울시의 대처 방식과 태도에서 진실규명을 위한 책임감이나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공직 4대 비리’로 꼽히는 성 비위 사건이 연이어 불거진 상황에서 서울시를 대표할 수뇌부는 뒤로 물러서 있는 모습을 보인 탓이다. 지난 15일 있었던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서울시의 입장 발표, 또 앞서 4월에 벌어진 ‘비서실 직원 성폭행’ 사건 관련 기자회견 모두 시 핵심 인사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이와 관련 행정안전부 고위 관계자는 16일 “최고 책임자가 전면에 나서고 해당 업무 책임자들을 뒤로 세웠더라면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시장 직무대행 체제인 서울시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민관합동조사단 구성 계획을 공표한 15일 기자회견에는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이 아닌 황인식 대변인이 나섰고, 지난 4월 비서실 성폭행 사건 때는 박 시장이 아닌 김태균 행정국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 같은 비판은 시 내부에서도 나온다. 시 관계자는 “사안의 중대성을 지도부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이에 대한 해결ㆍ재발방지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며 “그러나 매번 최고 책임자는 뒤로 빠지면서 진정성에 의문을 갖는 이들이 내부에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전날 서울시가 “여성단체, 인권전문가, 법률전문가 등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란 비판과 성과에 회의적인 시선이 이어지는 이유다.
이런 우려를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앞으로 꾸려질 합동조사단이 풀어야 과제가 적지 않다. 외부에서 진행 중인 수사와 별도로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의 실체 확인이 첫손에 꼽힌다. 이는 검ㆍ경 수사가 임순영 젠더특별보좌관이 박 시장의 피소 움직임을 언제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 실종 전날인 8일 밤과 이튿날인 9일 오전 두 차례의 대책회의에서 어떤 얘기들이 오고 갔는지, 또 고한석 비서실장이 박 전 시장에게 보고한 내용이 무엇인지 등 박 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한 동기를 밝히는 작업과는 차별화 된다.
이와 함께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과 ‘4월 비서실 성폭행’ 사건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도 합동조사단의 과제다. 피해 여성이 4년간의 비서실 근무를 마치고 작년 7월부터 다른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점, 피해여성이 그로부터 10개월이 흐른 지난 5월 12일 여성단체를 접촉해 도움을 요청한 점 등을 들어 지속적으로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2년 가량 피해여성과 근무한 비서실 직원은 “항상 밝고 적극적인 자세로 일을 했다”며 “피해자 측에서 주장한 이야기들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것들”이라고 말했다. 또 피해자가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사건 은폐 의혹도 반드시 밝혀내야 할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임순영 젠더 특보의 직무유기 문제도 합동조사단이 살펴야 할 대목이다. 시 행정과 정책 전반에 높은 수준의 성인지 감수성 적용을 위해 박 전 시장이 국내 최초로 만든 보직이다. 하지만, 사건이 불거질 즈음 자신의 직을 통해 수집한 정보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불미스러운 일’을 언급하며 사태 진화나 수습에 나선 정황이 나온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터지자 내부 게시판은 젠더특보 성토장이 됐다”며 “박 전 시장의 최측근이라는 자리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결국 내부를 향한 감시와 견제 실패로 일어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