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관련 의혹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경찰은 법원에 영장을 신청해 박 시장 휴대전화의 통신 내용 확인 작업에 착수했고 유족과 협의해 통화와 문자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포렌식 작업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규명돼야 할 부분은 여러 가지다. 성추행 의혹은 박 시장의 사망으로 공소권이 소멸돼 수사를 할 수 없겠지만, 피해 사실을 서울시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에서 이를 묵살했다는 피해자의 주장, 성범죄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피소 사실의 사전 유출 의혹 등은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특히 피소 사실의 사전 유출은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가해자에게 증거인멸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묵과돼서는 안 되는 범죄 행위다. 혹여 유출 과정에 서울시나 경찰, 청와대 관계자가 관여돼 있다면 유력한 대권 후보를 보호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권력을 남용했다고도 의심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주목되는 것은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16일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 수사 정보를 유출했다는 고발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했다. 여러 시민단체가 경찰청ㆍ청와대ㆍ서울시청 관계자들을 공무상비밀 누설 등의 혐의로 수사해달라는 내용으로 검찰이 직접 수사할지, 경찰에 맡길지를 곧 결정해야 한다. 사안의 성격상 이 수사를 경찰에 맡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피해자의 고소 사실이 조사 당일인 지난 8일 서울경찰청과 경찰청을 거쳐 청와대 국정상황실로 보고됐기 때문이다. 경찰과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지만 피소 내용이 박 시장에게 전달됐다면, 보고 계통에 있는 경찰이나 청와대의 누군가로부터 유출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검찰이 이 사건을 경찰의 ‘셀프 수사’로 떠넘긴다면 진상 규명의 의지가 없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박 시장 사망 당시 정황 확인으로 수사에 선을 긋고 있는 경찰에게 수사 정보 유출 의혹 사건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