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실장이 박 전 시장 실종 당일 성추행 고소 사실을 파악하고 긴밀하게 대응해 온 정황이 포착됐다.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서울시의 발표와는 배치되는 내용이어서 향후 박 전 시장의 사망 경위 및 피소 사실 유출과 관련한 경찰 수사에서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15일 서울시 관계자 등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의 최측근인 고한석 비서실장은 박 전 시장 실종 당일인 9일 오전 6시30분~7시 사이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별보좌관으로부터 박 전 시장의 피소 관련 내용을 보고 받았다. 앞서 임 특보는 8일 오후 4시30분 경찰에 피해자의 고소장이 접수되고 5시간 가량 뒤인 오후 9시30분쯤 서울시청에서 비서실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박 시장 피고소' 관련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고 실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다음날 새벽 급하게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정했다.
이는 고 실장과 임 특보가 그 동안 주장했던 "피소 사실을 언론 보도를 보고서 알았다"는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고 실장은 15일 오전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3시간 동안 박 전 시장 사망 관련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임 특보가 시장에게 보고한 사실을 알았느냐"는 질문에 "몰랐다"고 답했다. 8일 오후 3시 박 전 시장을 만나 ‘불미스런 일’을 보고했다는 임 특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고소 여부는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는 ‘고소인 측의 기자회견 전까지 박 전 시장의 피소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향후 경찰 수사에 고 실장은 박 전 시장의 사망 경위를 밝힐 수 있는 ‘키맨’으로 주목되고 있다. 박 전 시장과 서울시 관계자들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고 실장은 임 특보의 보고를 받은 뒤 오전 9시쯤 서울 종로구 가회동 시장 공관을 찾아 박 전 시장과 1시간 가량 면담을 가졌다. 서울시 내부서 피소건과 관련해 긴박하게 움직인 점을 감안할 때 향후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방문으로 보인다. 면담이 끝난 뒤 박 전 시장은 오전 10시 44분 성북구 와룡공원으로 향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고 실장은 이어 오전 11시 서울시에서 열린 대책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실장은 이 회의에 참석한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추행 의혹 및 피소건 관련해 앞으로 대응 지침을 달라" "박 시장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고 실장과 임 특보 측에 수 차례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경찰은 고 실장에 이어 비서실 관계자 등 박 전 시장의 주변 인물들을 추가로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박 전 시장의 휴대폰 디지털포렌식과 함께 통화내역 조사도 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박 전 시장 사망장소에서 발견된 휴대폰과 그의 개인 명의로 개통된 휴대폰 2대 등 총 3대에 대한 통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영장을 청구했다. 고 실장은 이날 조사 직후 취재진에게 박 전 시장과 마지막 통화 시간을 "약 1시 39분으로 기억한다"는 말을 남겼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고 실장은 지난 4월 7일 서울시장 비서실장직에 임명됐다가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면직됐다.
한편 서울시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이날 긴급브리핑을 갖고 “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여성단체 인권전문가 법률전문가 등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설명했다. 조사단의 구성과 운영방식 일정 등은 여성단체 등과 구체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