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 경쟁의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입력
2020.07.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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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모 일간지에 우리 군이 개발한다는 현무-4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 미사일은 탄두 중량이 2톤이며, 극단적인 고각발사를 통해 인공지진 효과를 낸다 했다. 중금속으로 채워진 탄두를 엄청난 속도로 땅에 충돌시켜 지하 300m의 시설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북한이 놀랐을 것이다. 

지하 300m에 있는 벙커를 무너뜨리는 것은 미국에도 큰 도전이다. 미군은 지하 30m까지는 재래식 벙커버스터로 뚫고 들어간 후 거기서 핵폭발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지하 깊숙이 있는 표적을 무력화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강력한 인공지진을 일으키되 방사능 유출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지난 6월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은 5월 31일에 있었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담화를 냈다. 현무-4 관련 기사가 나간 지 6일 후의 일이다. 어째 시점이 묘하지 않은가. 아무튼 그 날부터 이어진 북한의 험악한 언사는 온 국민을 분노케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대북전단이 북한의 폭발적인 분노를 자아낸 주원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전단지는 일종의 발화점이었을 것이다. 북한의 분노를 활활 타오르게 한 주된 연료는 좌절감이다. 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난도 문제거니와 군사적 좌절감도 상당했을 것이다. 

9ㆍ19 군사 합의 이후 우리는 F-35, 글로벌 호크 등 첨단 무기를 들여 왔다. 현무-4와 같은 미사일 개발에도 매진했다. 코로나 사태만 아니었다면 우리 국방비가 곧 일본의 방위비를 넘어설 태세였다. 고노 다로 일본 방위장관이 우리 국방비 증가 추세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니 북한은 오죽하겠는가.

현무-4에 대한 기사가 사실이라면 핵에 대한 재래식 억제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올 만하다. 사실상 전술핵급 파괴력을 가진 무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에 좌절하곤 했지만 북한도 우리의 전력 증강에 기가 질렸을 것이다. 

남북 각각의 군사적 파괴력이 너무 강해졌다. 맹수가 되었다. 그런데 맹수들 간의 대결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가. 작정하고 싸우면 피차 치명상을 입을 걸 알기 때문이다. 의외로 토끼, 비둘기와 같은 동물들의 대결이 참혹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진중하게 행동하지 않은 결과다. 남북은 이제 자신의 군사적 파괴력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자칫하면 2017년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6월 위기는 일단 진정된 듯하다. 그러나 남북이 이대로 군비 경쟁을 지속한다면 위기는 다시 올 것이 뻔하다. 군비 경쟁도 정도껏 하는 법이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일 적에도 숨 쉴 공간은 허용했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하면 된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이가 되자는 게 아니다. 공존의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고 군비 경쟁도 정도껏 하자는 것이다. 

전단지 문제도 봉합 수순에 접어든 것 같고, 안보 팀도 새로이 구성되고 있다. 이 정치적 모멘텀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요새 8월 연합훈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한미 간에 고민이 깊다고 한다. 미국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니 연합훈련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 이참에 이번 훈련을 취소하고 군사적 압력을 빼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건 어떨까. 가능한 일이고, 빨리 움직일수록 전략적 효과는 클 것이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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