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감출 수 없다. 그는 실종신고 7시간 만인 10일 0시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숙정문 인근 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유서를 남기고 타살 정황이 없는 것으로 보아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박 시장의 죽음은 8일 그의 전직 비서가 성추행 혐의로 박 시장을 고소한 일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또한 충격적이다. 그는 2011년 이후 3선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며 젠더 특보 임명, 여성권익담당관 신설 등 여성인권 제고를 위한 시정에 적극적이었다.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늘 도덕성과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했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고 국회의원 낙선운동, 아름다운가게 등 다양한 형태의 실천적인 운동을 개척한 시민운동가였다. ‘성희롱은 범죄’임을 우리 사회에 알린 서울대 우 조교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자를 변호한 인권변호사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상습 성추행의 가해자로 지목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정치권은 정쟁을 일시 중지하고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정협의 등 일정을 취소하고 이해찬 대표 등이 빈소를 찾았다. 야당 의원들도 잇따라 추모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지자체장이 미투 대상이 된 것이 세 번째라는 점에서 정치권이 애도에만 그칠 일이 아니다. 권한은 막강하나 감시하는 이 없는 지자체장이 얼마나 쉽게 성비위를 저지를 수 있는지 자성하고 경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헌신적으로 사회 변화를 이끌었고 삶의 매 순간에 열정을 바쳤던 박 시장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허탈함에 빠진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박 시장을 고소한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쏟아서는 안 될 일이다.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고소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을 지목하고 사진을 유포하거나, 고소를 음모로 몰아붙이는 끔찍한 일이 시작됐다. 수사 대상이 사망함에 따라 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처리될 것이고,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선 이것도 억울할 일인데 ‘고소인 신상을 밝혀서 무고죄로 고발하자’는 일부 박원순 지지자의 몰지각한 주장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지금 우리 사회엔 죽음에 대한 애도와 피해자 삶을 파괴한 성범죄에 대한 평가는 별개라는 시선이 엄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