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3차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다만 "도움이 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북한에게 11월 대선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양보를 요구한 것이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없어 3차 회담 개최 여건은 극히 미진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차 톱다운 방식으로 애드벌룬을 띄웠다는 점에서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그레이TV와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과의 3차 회담 개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는 그들(북한)이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우리는 확실히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거듭된 질문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3차 회담이 도움이 될 지를 묻는 질문에는 "아마도"라면서 "나는 그(김정은)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우리는 지금 북한과 큰 전쟁을 벌이고 있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훌륭한 일을 했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했다. 북한과의 대화로 전쟁을 막았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또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아직 운반 수단 등이 없다"면서 "우리는 누구도 잃지 않았고 누구도 죽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전체 내용은 12일 방송될 예정이다.
"도움이 된다면 정상회담을 갖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북한의 양보를 전제로 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당장 호응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북한 이벤트'를 활용하고 있다고 여길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북미 협상 실무를 총괄하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최근 담화에서 "조미(미북)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뤄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것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 미 외교가에선 대선이 4개월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논란과 인종차별 반대 시위 등 산적한 국내 현안, 외교 사안은 선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 등을 이유로 3차 회담 가능성을 낮게 봐왔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이 최근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일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물리적 어려움에도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적극 고려할 만큼 그 가치를 높게 여긴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도 있다. 대북제재 완화를 원하는 북한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 외에 다른 길이 요원한 현실을 감안할 때 고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북미가 당장은 상대방의 양보를 주장하며 거친 힘겨루기를 이어가더라도 앞선 두 차례 정상회담 성사 당시와 유사하게 친서 교환 등을 통해 정상회담 개최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김소연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