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아동ㆍ청소년 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씨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이 또 하나의 사법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 판결을 내린 서울고법 강영수 판사의 대법관 자격박탈 청와대 국민청원에 하루 만에 30만명 넘게 동의했다. 청원의 실효성을 떠나 이 같은 공분은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에서 비롯됐다. 22만여건의 아동ㆍ청소년 성착취물을 유포해 수억 원을 벌어들인 손씨에게 고작 징역 1년6개월로 죗값을 치르게 한 게 한국 법원이다. 영국 BBC는 계란 18개를 훔친 상습절도범에 대한 구형량과 같다고 보도했다.
▦ 국민청원 대상이 된 법관은 강 판사가 처음이 아니다. 오덕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박사방 운영진 이모군 사건을 맡았다가 다수 국민청원이 제기된 후 재배당을 자청했다. 50여만명이 동의하자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고(故) 구하라씨에게 성관계 동영상 유포를 협박해 자살로 몰아간 최종범씨에게 집행유예형을 선고했고, 고(故) 장자연씨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었다. 국민들이 오 판사의 성 인지 감수성이 성범죄 판결을 맡기에는 결격이라고 보는 이유다.
▦ 법으로 보장된 판사 지위를 국민청원으로 흔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개별 사건의 세세한 증거를 모른 채 판결을 평하기 어렵고 여론은 마녀사냥으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더 큰 위험은 법관이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결한다는 사법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이다. 손씨 사건의 2심 재판부는 어린 시절 정서적·경제적 어려움, 불우한 성장과정, 결혼으로 인한 부양가족 등을 두루 참작해 감형했다. 법원이 성범죄 피해자의 고통은 외면하고 가해자에겐 쉽게 이입한다는 지적은 입이 아프게 반복된 바다.
▦ 법관의 양심은 언제부터 이렇게 국민의 양심에서 동떨어지게 됐을까. 국민의 삶과 이토록 괴리된 법관의 독립은 무엇을 위해 보호해야 하는 걸까. 2014년 울산 아동학대 사건은 아동학대치사에 최초로 살인죄 적용을 인정한 판결이었다. 당시 국민적 공분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면, 계모가 손발로만 때려 살인의 고의가 없다고 본 1심 판결을 뒤집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판사들이 입법 미비와 양형기준을 변명 삼아 반인륜적 성범죄에 솜방망이 처벌, 기계적 감형을 지속하는 한 국민청원 역시 끝나지 않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