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3건의 비준을 다시 추진한다. 이를 위한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실업자ㆍ해고자, 5급 이상 공무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등 노조 활동의 제약이 대폭 완화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7일 국무회의에서 ILO 핵심협약 29호, 87호, 98호 3건의 비준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비준안은 대통령 재가를 거쳐 이달 중으로 국회에 제출된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가급적이면 금년도에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국제 노동 기준을 담은 8개 핵심협약 가운데 4개는 비준하지 않았다. 87호 협약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으로 노동자의 단체 설립과 가입ㆍ활동의 자유에 관한 것이고, 98호는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의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으로 노사의 자유로운 교섭을 보장하고 노조 활동에 대한 불이익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정부가 이들 협약을 반영해 만든 개정 노조법은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5급 이상 공무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 공무원노조법과 해직 교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개정 교원노조법도 이들 협약을 반영한 것이다.
29호 협약은 '강제 또는 의무 노동에 관한 협약'으로 모든 형태의 강제 노동을 금지한다. 다만, 순수하게 군사적 성격의 작업은 예외로 한다. 이 협약과 상충하는 게 사회복무요원 제도다. 사회복무요원 근무는 강제성이 있는 데다 군사적 성격의 작업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병역판정검사에서 4급(보충역) 판정을 받은 사람에게 현역과 사회복무요원 중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개정 병역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사회복무요원 근무에 선택권을 부여해 강제성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경영계의 반대에도, 외부의 압박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을 더는 미루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EU)은 한국이 ILO 핵심협약을 미뤄온 게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에 해당한다며 2018년 말 한-EU FTA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에 들어갔다. 한국이 한-EU FTA 규정을 위반했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EU는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을 상대로 불이익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임 차관은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뿐 아니라 우리 기업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일"이라며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익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