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에 걸린 자국민 수가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보건 위기 앞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편가르기’ 정치에 여념이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우려에도 대대적인 독립기념일 야외 행사를 잇따라 열며 지지층 결집에 골몰했다. 반(反)인종차별 시위를 ‘급진 좌파’로 규정하면서 색깔론에 불을 지폈고, “코로나19의 99%는 무해하다”는 가짜뉴스도 스스럼 없이 내뱉었다. 아무리 대선을 앞둔 지지율 회복 전략이라지만 “분열의 ‘문화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개최된 독립기념일 기념식 ‘미국에 대한 경례(salute to America)’ 연설을 통해 “미국 영웅들은 나치를 무찌르고 파시스트를 몰아내고 공산주의자들을 전복시켰다”며 “우리는 지금 급진좌파와 마르크스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선동자, 약탈자를 격퇴하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결코 성난 무리들이 우리 조각상을 허물고 역사를 지우고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우리의 자유를 뭉개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인종 차별 시위대가 업적을 가리지 않고 역대 대통령상 철거를 시도한 것을 싸잡아 급진 좌파로 묶은 뒤 이념 대결 프레임을 부각시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사우스다코다주(州) 러시모어산에서 열린 불꽃놀이 행사에서도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향해 “역사를 말살하는 무자비한 캠페인”이라며 “우리의 가치를 지우고 있다”고 성토했다. “미국 독립운동을 타도하려 고안된 좌파 문화혁명”이라고도 했다.
사실상 역사적 인물의 동상 철거를 금지하는 강제 조치에도 착수했다. 그는 이날 ‘미국 영웅들의 국립정원’을 조성해 2026년 독립기념일에 개장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로널드 레이건 등 역대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조지 패튼과 같은 제2차 세계대전 영웅, 빌리 그레이엄 목사 등 국립정원에 포함돼야 하는 인사들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계속된 트럼프의 이념ㆍ역사 공세와 선동적 언행에 뉴욕타임스, CNN방송 등 주류 언론은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시위를 촉발 시킨 흑인 차별과 경찰의 과잉 진압이란 근본적 원인은 제쳐 두고 “공포와 분열을 자극하는 편가르기로 연임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힐난이다.
아울러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주정부들이 주관하는 불꽃놀이 행사의 80%가 취소된 상황에서 이틀 연속 야외 행사를 가진 것도 보건 정책을 총괄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의무를 저버렸다는 지적이 많다. 두 행사 참석자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거리 두기도 지키지 않았다. 뮤리엘 바우저 시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날 워싱턴에선 미 해ㆍ공군의 특수팀이 참여하는 에어쇼와 대규모 불꽃놀이 행사도 열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99%는 전혀 해롭지 않다”며 “우리는 많은 진전을 이뤘고 우리의 전략은 잘 굴러가고 있다”고 무책임만 낙관론만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