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방지법 실행 1년...처벌조항 없어 괴롭힘 '방치법'

입력
2020.07.05 16:00
직장갑질119 1000명 대상 설문10명 중 4명 직장내 괴롭힘 경험…신고는 3%뿐
신고자 10명 중 4명 "신고 뒤 부당한 대우 받아" 
"사용자에게 신고를 노동청에 직접 신고로 바꿔야"

 

한 기업의 임원 수행기사인 A씨는  담당 임원의 반말과 폭언에 시달려왔다. 임원은 A씨가 입사한 첫날부터 무시하는 말투로 부르는 것은 물론, ‘야, 담배 두 개만 사와’와 같이 업무 외 개인적 심부름을 시키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근무는 오전 7시부터 늦은 밤, 또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바쁘다’는 임원의 성화에 불법 유턴 등 교통법규를 어긴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A씨에게 가장 힘들었던 건 시시때때로 날아오는 ‘XX놈, X새끼’와 같은 욕설이었다. A씨는 “이런 고생을 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만두라는 소리를 듣는데 달리 도움을 청할 곳도 없어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7월 16일부터 직장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정신적ㆍ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방지하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지만, 직장 갑질이 빈번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 시행 약 1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상당수 직장인들이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지만,  신고 등 적극적 구제 요청을 한 것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법의 효율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5일 직장갑질119가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19~25일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454명(45.4%)에 달했다. '괴롭힘 방지법' 실행 직전인 지난해 조사(44.5%)보다도 되레 0.9%포인트 높은 수치다. 주된 괴롭힘 유형(복수응답)으로는 모욕ㆍ명예훼손(29.6%), 부당지시(26.6%)가 가장 많았고, A씨처럼 폭언ㆍ폭행을 경험한 경우도 17.1%나 됐다. 응답자들 중 ‘심각한 수준의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한 경우도 33.0%에 달했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뒤 적극적인 구제노력을 한 경우는 드물었다.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복수응답)에 대해 묻자 62.9%가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고 답했으며, 나머지도 개인적으로 항의(49.6%)하거나 친구와 상의(48.2%)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처럼 소극적인 대응을 한 이유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67.1%)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라는 응답도 24.6%였다. 

직장인들의 이 같은 우려는 근거가 없지 않다. 이번 조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따라 사내 조정기구 또는 고용노동청에 사건을 신고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단 30명(3.0%)에 그쳤는데, 이들 중 절반 이상(50.9%)이 괴롭힘을 인정받지 못했다. 신고를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경험한 경우도 10명 중 4명(43.3%)에 달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괴롭힘 방치법'이 될 것이라는 평가는 예견됐던 일이다. 법이 괴롭힘 발생 예방 및 사업장 별 자율 해결에 초점을 두는 대신,  사업주나 가해자를 처벌하는 조항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갑질이나 괴롭힘을 신고해도 바뀌기 보다는 되레 불이익을 받는다는 불신만 높아진 셈이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피해자가 우선 사용자에게 신고하도록 한 조항을 바꿔 노동청에 직접 신고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예방교육 실시도 의무화해 법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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