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이익이냐, 당국 권고냐... 하나금융 중간배당 고심

입력
2020.07.02 01:00
19면


금융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한 자본확충을 위해 배당 자제를 당부하면서, 국내 주요 은행 중 유일하게 중간배당 전통을 이어온 하나금융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주주 이익’과 ‘당국 권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인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융권 전반의 배당 정책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는 대형 은행들의 배당금 지급에 상한 제한을 두고 자사주 매입을 금지하기로 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전날 열린 10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며 “실물경제에 대한 자금 공급 기능을 유지하는 동시에 코로나 사태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대손충당금 적립 등 손실흡수능력 확충에 노력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코로나발 경기침체에 대비해 실탄을 넉넉히 쌓아두라는 의미로, 배당하지 말 것을 우회적으로 요구한 셈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4월 “유럽중앙은행과 영국 건전성감독청 등은 코로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에 배당금 지급, 자사주 매입 및 성과급 지급 중단을 권고했고 글로벌 은행들이 동참하고 있다”며 “국내 금융회사들도 해외 사례를 참고해 충분한 손실 흡수능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은행주가 대표적인 고배당주로 꼽히는 만큼, 금융당국의 이 같은 ‘배당 자제령’은 대부분의 국내 은행을 겨냥한 것이다. 다만 통상 은행들은 1년에 한 차례 3월 정기주총 때 배당하기 때문에 올해는 영향권에서 다소 비껴난 상태다. 그러나 국내 주요 은행 중 유일하게 중간배당을 실시해 온 하나금융의 경우 이달 말 열리는 이사회에서 배당 여부와 배당액 규모, 시기 등을 결정해야 한다.


하나금융은 지주사가 출범한 2005년부터 중간배당을 해왔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 특히 주당 중간배당금과 총 배당액도 2015년 각각 150원, 444억원에서 지난해에는 500원, 1,499억원으로 지속적으로 늘었다. 배당률 역시 꾸준히 확대돼왔다.

그러나 올해는 고심을 거듭하는 분위기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달 하나금융 측과 만나 배당 자제를 거듭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황에서 만일 하나금융이 종전처럼 중간배당에 나설 경우 금융당국에 이견을 내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중징계와 외환파생상품(키코) 등 이슈에서 금융당국과 각을 세워온 점을 감안하면 ‘자제령’을 무시하면서까지 배당을 밀어붙이는 것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주가를 떠받치는 가장 큰 원동력인 중간배당을 포기하긴 쉽지 않다. 올해 상반기 코로나19로 국내 금융주 주가가 반토막 나는 상황에서도 하나금융은 나름 ‘선방’했는데, 이는 중간배당 매력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배당은 주가 하락 상황 속에 주주를 달랠 수 있는 ‘당근책’ 중 하나이자 투자자와의 신뢰 문제”라며 “중간배당이 무산될 경우 주주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외국인 주주가 64%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을 잡기 위해서라도 중간배당이 필요하다.

일단 시장에서는 하나금융이 지난달 30일을 기준으로 주주명부를 폐쇄한 것을 ‘배당 청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주주명부 폐쇄는 배당 받을 주주를 확정하기 위한 작업인 만큼 중간배당을 집행하기 위한 수순으로 본 것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주주명부 폐쇄가 곧 중간배당 실시라고 보긴 어렵지만 일단 여지는 남겨뒀다고 볼 수 있다”며 “이달 열릴 이사회에서 신중하게 검토한 뒤 배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경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