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선거는 표 바꿔먹기다.” 국제기구 수장을 뽑는 선거 과정을 요약한 문장이다. 출마자의 능력과 자질도 중요하지만, 자국의 이해득실을 따져 표를 던지는 회원국 간 관계가 결정적이라는 의미다. 각기 다른 선거에서 서로를 지지해주기로 하는 ‘교환지지’도 하나의 전략이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표심 얻기 전쟁에 시동이 걸렸다. 현재까지 출마 선언을 한 나이지리아, 이집트, 멕시코, 몰도바와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될 한국은 WTO 164개 회원국 중 다수의 표를 얻기 위해 다양한 교섭 전략을 펼칠 예정이다.
국제기구 출마는 개인의 능력, 국익 부합 여부, 한국이 가진 전문성과 기여도, 무엇보다 승산이 있는지까지 고려해 결정된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1일 라디오에 출연해 유명희 본부장의 출마에 대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WTO 사무총장 선거는 우리가 갖고 있는 해외네트워크를 총동원해야 되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매년 연말이면 다음 해에 외교력을 중점적으로 쏟을 국제기구 선거를 결정하는 선거조정회의를 연다. 국제기구 사무총장 자리뿐만 아니라 국제박람회나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대회 유치도 넓게는 선거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디에 외교력을 집중할지 전략을 마련하는 자리다.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외교부의 ‘국제기구선거조정회의 개최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이 회의에서는 “선거별 중요도, 진출 필요성, 국가이익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정도, 당선 가능성, 경합 정도, 여타 선거 입후보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교섭 수준을 결정한다”고 돼 있다.
진출 필요성과 예상되는 경합 수준에 따라 중점 선거, 주요 선거, 일반 선거로 나뉜다. WTO 사무총장은 국제기구 소재지 공관은 물론 전체 회원국 소재 재외공관을 통해 지지 교섭이 필요한 중점 선거에 해당한다. 지난해 한국이 당선된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이사국 선거 역시 선거조정회의에서 집중 교섭해야 한다는 결정을 거쳐 성공한 사례다.
선거 과정에선 필요한 경우 해외 주재 공관에서 관계자들을 초청한 리셉션 행사를 열기도 하고, 서울에서 주한 공관을 통해서도 지지교섭에 나선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 공한을 통해 지지 요청을 했는데 상대국에서 쉽게 결정을 해주지 않는다면 급을 높여 교섭에 나선다”면서 “표가 절실할 때는 장관 간 만남을 갖거나, 출마자가 출장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국내 선거와 마찬가지로 금품 수수나 접대는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따로 규정이 있는 건 아니다.
사무총장이나 의장 등 수장을 뽑는 선거와 이사국이나 위원국을 선출하는 선거는 기구 마다 방식과 임기가 천차만별이다. 회원국들에 다 개방되는 완전경쟁 방식도 있고, 지역 그룹별로 순번을 정하는 경우도 있다. 공통점은 한 국가에 계속해서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륙별 안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2006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당선됐을 때 ‘앞으로 한국에서는 1,00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이 안나올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한국이 입후보를 고려하는 국제기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외교 역량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선진국과 후진국 간 가교 역할을 하는 한국이 활동을 해주면 좋겠다는 국제기구 측의 요청도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이 수임한 자리는 이사국ㆍ위원국 21곳, 재판관ㆍ위원 8곳, 의장ㆍ사무총장 6곳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