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성 소독제로 가습기 살균을... 4년이나 몰랐던 대학병원

입력
2020.06.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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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참위 "도매업체 허위 제품설명서에 속아"
실태 조사 없어 피해자 여부 파악 안 돼


한 대학병원이 식기 등을 소독할 때 쓰는 유독성 소독제를 4년 넘게 '가습기살균제'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기간 해당 병원을 다녀간 환자 중 피해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아직까지 관련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29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 대학병원에서 2007년 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4년 4개월간 식기소독제 '하이크로정'이 가습기살균제로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알약 형태의 하이크로정은 국립환경과학원이 흡입독성이 있다고 밝힌 이염화이소시아뉼산나트륨(NaDCC)이 주성분인 소독제다. 반복 흡입할 경우 폐에서 독성 변화가 일어났다는 검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가습기살균제 '엔위드(N-with)'도  이 물질이 주성분이다. 엔위드를 쓰고 피해를 입었다고 환경부에 신고한 피해자는 93명이다.

하이크로정은 독성이 강한 약품이라 식품위생법상 식재료 또는 식품용 기구를 살균·소독하는 용도로 신고됐다. 가습기살균제로는 사용할 수 없지만 A 대학병원에 납품한 C업체는 제품설명서에 '가습기 내(물통, 분무통) 세균과 실내공기, 살균, 소독 목적으로 개발됐다' '세계 60개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안전한 제품이다' 등 허위 내용을 담은 것으로 조사됐다. 업체가 허위 설명서로 식기소독제를 가습기살균제로 둔갑시켰지만, A 병원은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하이크로정 3만7,400정을 구매해 사용했다. 사참위는 "A 병원은 원내 감염관리지침서에 하이크로정을 가습기 소독 용도로 명시해 지속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 특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A 병원이 하이크로정을 사용한 4년 동안 피해자가 나왔는지는 현재로선 파악되지 않고 있다. 관련 실태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예용 가습기살균제사건 진상규명 소위원장은 "사참위는 강제조사 권한 없이 병원이 임의제출한 자료로만 조사하기 때문에 환자 의료기록 등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다"며 "보건복지부와 환경부가 실제 피해 사례가 없는지, 다른 대형 병원·산후조리원·유치원 등에 유사 사례가 없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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