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9·19군사합의'... 한때 감격스러웠던 명 장면들

입력
2020.06.27 14:00






'9ㆍ19군사합의'는 2018년 9월 19일 평양에서 체결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당시 국방장관이 노광철 인민무력상과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이를 교환했다.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은 역사적 장면이었다.

9ㆍ19군사합의에는  상호 적대 행위 전면 중지,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서해 북방한계선(NLL)일대의 평화수역화, 남북 교류협력의 군사적 보장,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 등이 포함돼 있다. 그해 10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장성급군사회담에서 남북이 그 구체적 실천방안에 합의했고, 이후 상호간의 긴장 완화 조치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실질적인 첫  긴장 완화 조치는 그 이전에 실행됐다. 남북정상의 4ㆍ27판문점선언 직후 북한이 대남 확성기를 전격 철수하기 시작하자 우리 군도 5월1일 경기 파주시 최전방 부대의 고정식 대북 방송시설 등을 철거했다. 대북ㆍ대남 확성기는 단순한 상호 비방, 군사적 긴장 요인을 넘어 반세기 이상 이어 온 남북대결의 상징이었다. 이 확성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국민들은 안도와 함께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꿈꿨다. 그러나 최근, 그로부터 2년여 만에 북한의 대남 확성기가 다시 등장하고 말았다.  김 위원장의 군사행동 보류 결정으로 며칠 만에 다시 철거되기는 했으나 9ㆍ19군사합의가 한 순간에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불식하지는 못하고 있다. 




남북은  6ㆍ25 전쟁 격전지이자 300여 구의 전사자 유해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공동으로 유해를 발굴하자는 데도 합의했다. 공동 유해 발굴을 위해 남북간 군사분계선(MDL)을 관통하는 전술도로를 연결했는데, 이 과정에서 남북 군인들이 휴전 이후 처음 군사분계선(MDL) 내에서 만나 악수하는 극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비무장지대(DNZ) 내 전방감시초소(GP) 철수도 이뤄졌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은 상호 1㎞ 내 남북 각 11개의 GP에서 군 병력을 철수하고 초소 시설 또한 완전 철거했다. 남북이 상대 GP를 방문해  완전 사용 불가능한 상태임을 확인하면서 실질적인 '비무장' 지대화의 첫발을 내딛기도 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남북한 경비병 또한 비무장 상태로 근무하는 한편, 추후 방문객의 자유왕래도 추진하기로 했다. 




상호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동해와 서해 일대에서도 일정 구역을 완충지대로 지정했다. 북한은 해안포 동굴진지의 포문을 닫았고,  우리 해군은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함정의 포에 덮개를 씌운 채 해상작전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해상뿐만 아니라 임진강과 한강, 바다가 만나는 한강 하구를 남북 공동이용수역으로 설정하고, 남북 공동수로조사를 벌여 해도를 제작는 등 민간선박 자유항해를 위한 준비 작업도 이뤄졌다. 







9ㆍ19 군사합의는 최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남 비방 담화를 계기로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북한은 접경지역에 대남 확성기를 재설치하기 시작했다. 연평도에서 바라보이는 북한의 해안포 진지의 포문이 열린 모습도 관측됐다. GP로 부대를 재진입시키고 접경지역 군사훈련을 재개하겠다는 북한군 총참모부의 발표에 대해 우리 군 또한 강경 대응 방침을 거듭 밝히며 남북의 긴장은 나날이 고조됐다.  

23일 김 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 보류를 결정한 직후 강대강으로 치닫던 남북 관계는 소가 국면에 들어선 모양새다. 북한은 접경지역에 재설치한 확성기도 다시 철거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차곡차곡 쌓여 온 남북 긴자 완화의  결정적 장면들이 다시 현실의 일부로 살아날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왕태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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