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우의 이코노칵테일] “은퇴는 이동하는 과정일 뿐, 은퇴라는 단어를 죽여라”

입력
2020.06.27 04:30
14면
<13>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젊은 층 오지 않는 틈새시장 찾으면 젊은 세대와 충돌 안해"


베이비부머 1세대(1955~63년생)의 은퇴가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희망퇴직 등이 이어지면서 올해 연말이면 예년과 대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은퇴대열에 들어설 것으로 점쳐진다.

이미 국내 항공업계 등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은 유ㆍ무급휴직 등이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2차 대유행을 하거나 만성적인 사태로 진행될 경우 정상적인 직장 복귀가 보장될 수 없다.

더욱이 7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외에도 출생률이 높았던 베이비부머(1968~1974년) 2세대까지 이어지면 총 1,600만~1,7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0%를 넘어간다. 이들도 향후 10년 전후로 은퇴를 하면 노년부양비율이 급등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이 정부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 60세 정년이 실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기업부담 등의 문제로 난관은 있으나 초저출산율과 초고령화 시대를 극복하려면 다른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경제학박사이자 은퇴 연구 전문가인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을 만나 은퇴를 대비한 마음가짐과 정년연장 등의 문제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김소장은 은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는 “은퇴는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은퇴라는 단어를 그냥 죽여버려라”고 했다.

-은퇴를 앞둔 사람들은 뭐부터 준비해야 하나.

“우리가 20대에 대학을 마치고 대량취업을 하기 때문에 그때는 표준적인 길이 있었는데 이후 커리어패스(career pathㆍ경력경로)는 개인별로 다 상황이 다르다. 특히 주된 직장에서 퇴직 후에 걷는 길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문과 출신으로 대기업에 다니다 나와서 폴리텍 대학에서 전기설비 자격증을 취득해 아파트에서 야간에 근무하면 18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건물은 보통 24시간 대기를 해야 한다. 젊은 친구들은 연봉도 적고 밤에 근무하기도 어렵다. 그런 틈새 시장에서 일하는 분들도 있다. 감정평가사나 손해사정인을 하는 분도 있다. 자격증을 따면 틈새 시장을 노릴 수 있다. 월급이 박해 풀타임으로 하기 힘든 분야의 시장으로 들어가면 젊은 사람들과 충돌도 하지 않는다.”

-막상 취업을 하려 해도 컨설팅 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취업 컨설팅 분야가 약하다. 베이비부머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나오는데 시장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 비단 퇴직자들뿐 아니라 경력직으로 옮겨 다니는 분들도 많다. 정부 차원에서 컨설팅을 많이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른다. 고용노동부, 서울시 등에서 일자리 센터를 마련해 놓고 정보는 많이 주지만 활용도는 높지 않고 지인들을 통해서 직장을 많이 구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신중년에 대한 체계적인 재교육 시스템이 없다. 앞으로도 베이비부머 인력이 쏟아져 나오고 세상은 디지털로 변해 간다. 이 인력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쓸까에 대한 체계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 하긴 청년 일자리도 아우성이다.”

-베이비부머도 걱정이지만 1970년대생도 걱정이다.

“1972, 1973년생이 제일 많다. 110만명에서 120만명 태어난 것 같은데 1962, 1963년생이 피크였으나 조금 떨어졌다가 1967부터 1974년생까지 증가한다. 1955년부터 1974년생까지 길게 걸쳐있다. 1,600만~1,7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3% 가까이 된다. 수치를 보고 걱정하는 것과 이걸 정말 심각하게 뼈저리게 느끼는 건 차이가 크다. 실제로 닥치면 대단한 문제가 될 것이다. ”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제일 걱정되는 게 노년부양비율이다. 노년부양비율이라는 것은 생산가능인구가 분모에 있다. 15세에서 64세다. 분자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있는데, 이 비율이 나중에 80~100%를 넘어 간다. 그런데 이건 형식적인 노년부양비율이고 실질적인 노년부양비율을 봐야 한다. 실질적으로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얼마이며 65세 이상인 사람 중에 진짜 부양을 받아야 할 사람이 얼마인가다.

6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자립 비율을 높이면 실질적인 노년부양비율은 낮아진다. 예를 들어 65세 이상이 아니라 75세 이상만 부양하면 되도록 시스템을 바꿔 놓고 생산가능인구를 15~64세가 아니라 15~74세가 된다면 노년부양비율은 2040년 이후에도 지금 수준이 된다. 60대부터 퇴직을 많이 하는데 이 때부터 70대 중반까지 생산성을 어떻게 높이느냐가 노년부양비율의 핵심 문제다.

몇 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크게는 자산과 노동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노인들이 가진 자산을 봐야 한다. 이 자산을 어떻게 소비로 연결하느냐다. 마찰이 적은 방법은 자발적으로 소비를 하게 하는 거다. 그러려면 이들이 뭘 원하느냐를 파악해야 한다. 의료라든지 관광이라든지 이런 쪽에 돈을 쓸 거다. 이런 쪽에 규제를 완화시켜 돈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

두 번째는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과 정기예금에 들어 있으니 수익률이 너무 낮다. 베이비부머들은 열심히 일해서 근로소득으로 자산을 축적했다. 그 자산의 운용효율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고령자들 자산을 4% 정도 운용수익률이 날 수 있는 자산으로 옮겨서 운용을 하면 정부가 덜 도와줘도 된다. 예를 들어 3,000조원에서 수익률을 1% 더 높일 수 있다면 매년 30조원이 더 생기는 셈이다.”

-왜 3,000 조원인가.

“우리나라가 대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개인 자산 규모다. 국민연금만 하더라도 700조원 수준이고 개인연금도 1,000조원, 정기예금도 대략 그쯤 되는 거로 알고 있다.

-일단 세대별로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는 하다.

“베이비부머 중 부자 노인이 먼저 가난한 노인을 돕고, 그래도 안 되면 젊은 층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 시스템의 핵심이 자산에 대한 과세다. 소득에 대한 과세가 아니다. 소득은 주로 젊은 층이 해당되고 자산은 고령자들이 들고 있다.

지금까지는 소득에 대한 과세가 모든 과세의 중심이었는데 앞으로는 자산에 대한 과세를 어떻게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먼저 고령자간에 불평등을 해소하고 그래도 낙오되는 사람들은 젊은 층이 부양하는 게 그나마 세대간 동반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선노노(先老老) 후노소(後老少)이다.

또 고령자의 노동력, 즉 인적자산이 있다. 인적자산이 일자리다. 이걸 활성화 해야 한다. 단순 근로직 말고 생산적인 곳에 투입하는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디지털 사회로 급속하게 변화하는 데 적응해야 한다. 우리 베이비부머는 학습을 할 능력이 있다. 고령자에 대해 국가가 의무교육을 시키는 방법도 있다. 재취업뿐 아니라 노후의 삶, 자산 관리 등을 교육하는 것이다.”


-일본처럼 정년을 65세이후까지 연장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퇴직자들에 직업 안정성을 높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정년연장이다. 그런데 60세로 연장한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기업이 갖는 부담도 있다.

일본은 여러 가지 방식을 사용한다. 퇴직했다가 재취업하면서 임금 구조를 완전히 새롭게 바꾼다든지 하는 식이다. 노동시장만이라도 훨씬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 기업의 조직 체계가 수직 구조로 되어있는 것도 문제다.

이런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하면 결국 ‘하박국 효과’가 나올 수 있다. 성경 하박국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게 될 것이고 가지지 못한 자는 빼앗겨서 어렵게 될 것이다.’ 정년연장을 한꺼번에 하지 말고 국민연금을 한 해씩 늦춘 것처럼, 거기에 맞게 한 해씩 정년연장을 시켜 주는 안도 있다.”

-일본은 정년연장 제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인가.

“일본은 종신고용 경향이 강하다. 버블이 꺼지고 나서도 종신고용을 유지하려다가 불황이 오래 갔다. 성장률보다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안정성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외환위기 때 노동법도 바꾸고 아웃소싱도 가능하게 해 노동시장이 확 바뀌었다. 비정규직 문제도 생겼다.”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막상 제대로 준비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세 가지 난관이 있다. 첫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둘째 금리가 너무 낮다. 세 번째는 저성장 국면이니 일자리는 줄어든다.

일자리를 찾는 분들께 세 가지 정도를 말씀 드리고 싶다. 우선 전문가의 코칭을 받아 보라는 거다. 노후에 어떤 장점을 가지고 뭘 하고 살아가는 게 좋겠다는 걸 자기 시각으로만 보지 말고 제 3자가 평가하는 거다. 진단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성 역할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서비스업이 늘고 제조업이 줄기 때문이다. 여성이 하던 역할에서 남성이 할 게 없는가를 찾아봐야 한다.

세 번째는 빨리 취업을 하는 게 좋다. 부동산이나 자산을 거래할 때와 마찬가지다. 시장이 안 좋을 때는 파는 가격을 대폭 낮춰 거래를 성사시켜야 한다. 앞으로 베이비부머가 퇴직 전선으로 계속 나온다. 조금 조건이 안 좋더라도 빨리 선점하는 게 좋다.

자신에게 투자도 해야 한다. 자식에게는 돈을 다 쏟아 붓고 투자를 했지만, 정작 본인에게 투자는 안 한다. 전문가에게 배우는 게 실력을 늘일 수 있다.”

-자산을 불리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일단 자기자산을 다 긁어 모아 대차대조표를 만들어야 한다. 베이비부머는 자산의 70% 이상이 주택이다. 주택에서 현금흐름이 나오지 않는다. 주택에서 벽돌 하나씩 빼서 팔 수는 없다. 하지만 주택연금 제도를 활용하면 현금창출을 통해 노후소득을 보충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들이 국민연금을 150만~170만원을 받는다. 주택가격이 6억원이면 월 150만원에 국민연금 150만원을 보태면 월 300만원이다.

1988년부터 국민연금이 시작되었으니 베이비부머들은 거의 전체가 받을 수 있다. 주택을 활용하면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리고 다른 금융자산은 수익률 4% 정도를 목표로 해서 자산 수명을 늘리는 게 좋을 것 같다.”

-자산수명을 늘리라고 했는데 방법이 쉽지 않다.

“1% 수익률을 내는 서식지에서 4% 수익률을 내는 서식지로 옮기라는 것이다. 자산이 두 배 되는데 걸리는 기간을 따지자면 금리를 72로 나누면 된다. 금리가 12%일때 72로 나누면 6이다. 6년이면 자산이 두 배가 된다. 4%면 18년이 걸린다. 1% 면 72년이다. 지금은 예금금리가 0%대다.

그러니까 초저금리 구간에서는 자산 증식은 멈춘다. 거의 블랙홀에 빠지는 상태이기 때문에 4% 되는 정도 구간으로 반드시 자산 수명을 늘려야 한다. 목표를 잡으면 방법이 생긴다. 인적자본도 물적자산도 모두 회춘시키자는 거다.

매년 4%는 힘들지만 길게 보면 4%는 얻을 수 있다. 리츠라는 부동산 간접투자도 수익률이 5% 정도 된다. 또 국내 자산에서 일단 탈출해야 한다. 해외 주식도 있고 해외 부동산도 있다. 요즘은 전세계 자산을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다. 글로벌 자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인컴(incomeㆍ수입)형 자산이다. 주식은 변동성이 크니 겁이 난다. 채권은 금리가 너무 낮다. 리츠 같이 임대료를 배당해 주는 것도 있고, 배당 주식도 있다. 이런 식으로 노후에는 금융에서 월급을 받아야 한다.”

-앞 세대는 은퇴하더라도 자식들이 취직해 받쳐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식들이 취직을 못하고 있다.

“일단 자녀들에게 부양을 받는다는 생각, 즉 ‘자녀 연금’은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보너스로 생각하는 게 좋다. 우리가 앞 세대는 모시고 뒷 세대로부터 부양을 못 받는 첫 번째 세대다. 국가가 국민연금이라든지 주택연금이라든지 이런 제도로 보조를 하고 있는데 이들 제도를 잘 활용하면서 각자도생하는 게 원칙이다. 세계적인 추세도 각자도생이다.”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유념해야 할 것은.

“일단 너무 당황하거나 떨지 말아야 한다. 퇴직을 하면 우리가 젊을 때 사춘기를 겪듯 사추기를 겪는다. 일본에도 그런 소설이 많다. 그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넘겨야 한다. 흙탕물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맑아지듯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면 이런 일을 꼭 할거야’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인생 후반에 한 번 해 본다’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100세 시대는 인생을 한 번 더 준 것이다.

불가에 이런 말이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은퇴를 만나면 은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라. 은퇴란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는 과정일 따름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여러 번 은퇴를 한다. “은퇴를 만나면 은퇴를 죽여라.”

조재우 선임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