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벽돌 사리탑 ‘정암사 수마노탑’, 3수 끝에 국보 승격

입력
2020.06.25 19:34
‘안동 봉황사 대웅전’은 보물 지정… ‘의성 고운사 연수전’은 보물 지정 예고

진신사리(석가모니 몸에서 나온 사리)가 봉안된 벽돌탑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水瑪瑙塔)’이 3수(修) 끝에 국보로 승격됐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410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을 국보 제332호로, 경북 유형문화재인 ‘안동 봉황사 대웅전’을 보물 제2068호로 지정하고, 역시 경북 유형문화재 인 ‘의성 고운사 연수전’을 보물로 지정예고 했다고 25일 밝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정암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은 진신사리를 들고 귀국해 643년에 창건한 절이다. 율사가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준 마노석으로 수마노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마노는 금ㆍ은과 함께 일곱 가지 보석 중 하나다. 마노 앞에 수(水)자가 붙은 건 물길을 따라 가져왔다는 의미라고 한다.

수마노탑은 기단에서 상륜부까지 완전한 모습을 갖춘 7층 모전석탑이다. 전체 높이는 9m다. 화강암 기단 위에 세운 탑 1층에 감실(龕室ㆍ사리나 불상을 봉안하려 탑신 내부에 만든 공간)을 상징하는 문이 있고, 그 위로 벽돌 모양 석재를 층층이 올렸다. 고려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수마노탑은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국보 제21호), 다보탑(국보 제20호) 등과 더불어 탑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희소한 탑이기도 하다. 1972년 해체 과정에서 탑 건립 이유, 수리 기록 등을 적은 돌인 탑지석이 발견돼 조성 과정이 확인됐다.

수마노탑이 국보로 승격된 건 세 번째 도전 만이다. 2011, 2013년 두 차례 국보 지정을 신청했지만 근거 자료 부족 등으로 부결됐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탑지석 등 자료에서 수리 기록과 연혁을 알 수 있는 데다 모전석탑으로 조성된 진신사리 봉안탑은 우리나라에 수마노탑 하나밖에 없는 만큼 국보로서의 역사ㆍ예술ㆍ학술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보물로 지정된 안동 봉황사 대웅전은 삼존불을 봉안한 정면 5칸의 대형 불전으로, 팔작지붕을 얹었다. 조선 후기에 3칸 맞배지붕 불전이 유행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특이하다. 전면의 배흘림이 강한 기둥도 조선 후기에 드문 양식이다.

근래 채색한 외부 단청과 달리 내부 단청은 17, 18세기 재건 당시 상태가 잘 보존돼 있다. 특히 우물 정(井)자로 짜 넣은 천장에 그린 용, 금박으로 정교하게 표현한 연화당초문, 연꽃을 입에 물고 구름 사이를 노니는 봉황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건립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각종 편액, 불상 대좌의 묵서(墨書ㆍ먹으로 쓴 글), 사적비, 중수기 등을 보면 17세기 후반 중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된 뒤에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는데, 전면과 옆면, 뒷면 공포(지붕 하중을 받치기 위해 만든 구조물)가 서로 다르다. 이는 조선 말기 어려웠던 안동 지역 불교계 상황을 반영한다는 게 문화재청 설명이다.

보물 지정이 예고된 의성 고운사 연수전은 1904년 세워진 대한제국 황실 기념 건축물이다. 1902년 고종이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하자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지었다. 기로소는 70세를 넘은 정2품 이상 문관의 친목과 예우를 위해 설치한 기구다. 국왕은 60세를 넘으면 기로소에 입소하는데, 기로소에 입소한 조선 왕은 태조, 숙종, 영조, 고종 등 4명뿐이다. 규모는 작지만 황실에 어울리는 격식ㆍ기법ㆍ장식을 갖췄고, 기능과 건축 형식이 독특하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의성 고운사 연수전의 문화재 승격 여부를 확정한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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