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행위 잇따르는 대학가... '선택적 패스제' 요구 봇물

입력
2020.06.2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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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이화여대·한양대 선택적 패스제 도입 요구 대학은 장학금 등 현실적 문제 탓에 "불가" 입장 기말고사 후 성적 둘러싼 논란 지속될 듯


대학생들이 학점 대신 '패스' 여부로 강의를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적 패스제'를 도입하라고 대학을 향해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1학기 강의가 파행 운영됐고, 온라인으로 치러진 시험에서 부정행위가 잇따르는 등 평가의 타당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학생들의 주장이다. 등록금 반환 요구에 이어 선택적 패스제까지, 초유의 '코로나 학기'를 치른 대학 내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경희대 총학생회는 23일 경희대 본관 앞에서 '학생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경희인 집중공동행동'을 열고 학교 측에 등록금 반환과 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요구했다. 선택적 패스제는 학생이 A, B 등으로 받은 학점을 '패스'로 전환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제도다. 패스로 이수한 과목은 학점 평균 산출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학생은 낮은 학점을 받은 과목을 패스로 전환해 평점을 높일 수 있다. 서강대, 홍익대는 이번 1학기에 선택적 패스제를 도입했다.

한양대 총학생회도 같은 날, 신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실패한 학사 운영을 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선택적 패스제를 채택하라고 촉구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도 대학 본부에 등록금 반환과 선택적 패스제 도입을 요구하며 전날부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류덕경 한양대 총학생회 정책위원장은 "학교 측은 1학기 학점의 비율 제한을 완화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상대평가를 하겠다는 입장"이라며 "강의 시간이 과제로 대체되고, 예정된 강의의 절반도 안 올린 수업이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을 반드시 줄 세워서 평가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비교육적"이라고 비판했다.

온라인 시험 도중 부정행위가 잇따르고 있는 점도 선택적 패스제 도입 요구에 불을 붙이고 있다. 성적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중앙대의 한 법학 과목 중간고사에서 학생들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통해 판례를 찾아주고 속기록을 공유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18일 온라인으로 치러진 한국외대 교양 과목 기말고사에서도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수백명의 학생이 정답을 공유한 사실이 확인됐다. 700여명이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 채팅방은 부정행위 논란이 일자 '폭파(대화방을 모두 나감)' 돼 진상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반면 대학은 선택적 패스제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이라, 기말고사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대학의 1학기 성적 처리 방식을 둘러싼 잡음이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성적을 받아보고 낮은 점수만 패스로 바꾸게 되면 학점과 연계된 '장학금' '전과'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는 오히려 일부 학생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부정행위가 발생한 과목에 한해서만 선택제 패스제를 도입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립대 관계자도 "성적은 다음 학기 장학금 문제와 연관이 있고, 모든 학생이 선택적 패스제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런 가운데 한성대는 이날 재학생 6,567명 전원에게 '코로나19 극복 장학금'으로 20만원씩을 지급하기로 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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