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지방기능경기대회 준비를 위한 합숙 중 사망한 경북 경주시 신라공고의 고(故) 이준서 학생의 극단적 선택 배경에 직업계고 기능반의 폐쇄적 훈련과 메달경쟁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ㆍ특성화고권리연합회 등으로 구성된 ‘고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 진상조사단’은 23일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지난달 17일부터 이군의 유족과 친구들, 학교, 경북도교육청 등을 대상으로 면담을 하고 관련 자료를 검토하며 사건을 자체 조사 해왔다.
조사단은 이군의 사망 원인을 ‘기능반을 그만두려던 요구가 실패로 돌아간 데 따른 절망감’이라고 추정했다. 조사단에 따르면 1학년때부터 기능반 소속으로 대회에 출전해왔던 이군은 지난 1월 말 기능반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담당 교사는 이군을 회유해 다시 훈련에 복귀하도록 했다. 사망 약 1주일 전까지도 이군은 ‘(대회 준비를) 못하겠다’는 속내를 털어놨지만 이에 대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조사단은 특히 학교 측이 이군의 사망에 대해 ‘가족 불화 탓’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직접적 원인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다만 담당교사가 이군을 훈련에 복귀시키려 설득할 때 강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사단은 신라공고의 기능대회 훈련과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군의 사망 당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 초중고교가 휴업한 상태였지만 학교는 합숙을 계속 해왔다. 학교는 학부모 동의서를 받았다고 해명하지만, 동의서에는 ‘훈련 중 코로나19에 감염되더라도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본인이 책임지고 학교에 대해 일체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는 면책 문구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기능반이 메달 경쟁을 위해 폐쇄적으로 운영된 데 따른 부작용도 포착됐다. 이군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기능반에 소속된 2년간 얼차려 등 신체적 폭력과 모욕적 언행 등으로 힘들어 했지만, 선후배간 위계질서가 심한 탓에 이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학부모들은 기능반이 대회 수상을 명목으로 심사위원 포섭용 금품이나 간식비 등을 요구했다고도 증언했다.
조사단장인 권영국 변호사는 “메달 경쟁을 위해 기능반에서 학생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던 학교의 욕심이 한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부가 나서서 학생의 죽음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진상조사를 하고, 메달 경쟁을 조장하는 기능경기대회와 직업계고 기능반 운영에 대한 재검토를 실시하라”고 말했다. 정부는 24일 오후 열리는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기능경기대회 준비학생의 학습권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대회운영 개선안을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