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악수는 없었지만… 문 대통령 '흔들지 말라' 메시지

입력
2020.06.23 04:30
3면
문 대통령, 반부패정책협의회서 "공수처 협력"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협력 당부 7개월 전과 달리 이번엔 '거리두기 의전' 신경쓴 듯 이해찬 대표도 "더 언급말라" 윤 총장 거취 입단속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이목이 잔뜩 쏠린 건 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 데 모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은 사사건건 부딪혔다. 최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감찰을 두고 날카롭게 충돌하면서 여권 일각에서 윤 총장 교체론까지 불거졌다. 이날 문 대통령이 법무부와 검찰의 '협력'을 주문하면서 갈등은 일단 봉합되는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올해 7월쯤으로 예상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눈앞에 둔 만큼 양측의 ‘불안한 동거’가 계속될 조짐이다. 

이날 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추 장관, 윤 총장이 둘러 서서 대화하는 장면은 없었다. 언론에 공개된 부분에서 세 사람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회의실인 청와대 여민관에 마련된 세 사람의 자리도 떨어져 있었다. 문 대통령으로부터 오른쪽으로 두 번째 자리에 추 장관이 앉았고, 윤 총장과 추 장관은 5명을 사이에 둔 채였다. 여민관 입장 시간도 저마다 달라 인사할 기회도 없었다.  

조국 사태 직후인 지난해 11월 열린 5차 반부패정책협의회 때와 온도차가 났다. 당시 문 대통령과 윤 총장은 눈 맞춤을 피하면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청와대가 이번엔 문 대통령과 윤 총장의 '거리 두기 의전'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시선부터 표정까지, 모든 것이 윤 총장을 향한 문 대통령의 메시지로 읽힐 것이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을 향한 발언도 최소화했다. 언론에 공개된 모두발언 중 4문장 정도만 검찰개혁에 할애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협력을 간결하게 지시하는 것으로 '모든 할 말'을 대신했다. 윤 총장 거취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을 차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확고한 신임을 보냈다고 볼 순 없지만, '윤 총장을 무리하게 흔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여당에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발맞추어 민주당도 ‘확전 자제’에 나섰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이 중점을 두고 있는 건 검찰 개혁이나 권력기관 개혁인 만큼 윤 총장 거취나 임기 문제로 프레임이 형성되지 않도록 언행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최고위 참석자가 밝혔다. 윤 총장의 거취를 겨냥한 공세를 자제해 달라는 ‘함구령’으로 해석됐다. 

 강경 검찰 개혁론자인 설훈, 박주민 의원을 중심으로 윤 총장을 압박하는 발언이 이어지며 ‘윤석열 찍어내기’ '검찰총장 흔들기' 논란이 번지자 일단 멈춤을 선언한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당 지도부가 윤 총장의 거취를 논의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최근 민주당에서 윤 총장 비판 여론이 비등했던 것을 두고는 해석이 분분하다. 윤 총장의 인사권을 가진 청와대가 나서기는 부담스러워 상대적으로 몸이 가벼운 민주당이 ‘윤석열 군기 잡기’에 나섰다가 수습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민주당이 윤 총장을 압박하고, 문 대통령이 재신임하는 ‘배드캅ㆍ굿캅’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공수처 출범을 앞두고 검찰이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일 경우 민주당과 윤 총장이 2라운드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수처 관련 후속 법안이 중요한데 ,이런 기사는 나오지 않고 윤 총장 기사만 나온다”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출범을 위해 윤 총장 비판을 일단 자제하지만,  민주당이 언제든 다시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이동현 기자
정지용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