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워킹그룹이 연일 북한의 포화를 맞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9일 논평을 내고 “한미실무그룹(한미워킹그룹)이라는 굴레를 받아쓰고 북남 사이 문제를 사사건건 외세에게 일러바치며 승인이요, 청탁이요 구걸했다”고 비난했다.
한미워킹그룹을 남북관계 파탄 원인으로 겨냥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담화(17일)와 다르지 않다.
이에 여권에서도 “남북관계의 걸림돌이다(16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실상 (미국의) 결재를 받는 구조가 됐다(18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며 한미워킹그룹 해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 한미워킹그룹이 남북 간 협력사업을 가로막았는지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결재 시스템?
한미워킹그룹이 남북 간 사업에 대한 미국의 결재 창구로 비쳐질 여지는 충분하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구성됐고, 여기엔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 조야의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기능은 미국이 아닌 ‘한국의 편의’를 반영하고 있다는 반론이 뒤따른다. 정부 관계자는 “대북사업에 제재를 걸겠다는 게 아니라, 최대한 신속하게 제재를 회피할 수 있도록 일종의 ‘패스트트랙’ 역할을 하는 게 한미워킹그룹”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대북 사업이 미국 재무부 중심의 복잡한 대북제재망에 걸려 되돌아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대북제재 당사국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구조하는 것이다. 실제 한미워킹그룹에는 미국 측에서 국무부, 백악관뿐 아니라 재무부 관계자들도 참석한다.
남북사업을 가로막았다?
올 초 문재인 정부는 ‘대북 개별관광’과 ‘철도도로 연결’, ‘방역보건 협력’을 새로운 대북협력 사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들 사업에 대해 명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낸 사실은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방역 지원 의사를 담은 친서를 김 위원장에게 보내, 한국의 남북 방역사업에 힘을 실었다. 또 한미는 지난 2월 서울에서 한미워킹그룹 국장급 회의를 열어 철도연결과 개별관광 사업을 논의했다. 미국의 적극적 지지까진 아니더라도 암묵적 동의는 이뤄졌다는 게 당시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오히려 북한은 남측의 제안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미워킹그룹 때문이 아니라, 애당초 북한의 이에 대한 호응이 없었던 셈이다.
개성공단ㆍ금강산관광 불발도 한미워킹그룹 탓?
김 제1부부장은 17일 담화에서 “북남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한미실무그룹이라는 것을 덥석 받아 물어 (중략) 오늘의 참혹한 후과로 되돌아 왔다”고 주장했다. 남북 정상은 2018년 평양공동선언에서 “‘조건’이 마련되는 대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한다”고 합의했다. 단, 두 사업은 북한과의 사업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와 대량 현금의 북한 유입을 막은 2987호에 위배될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조건’ 즉 비핵화 문제가 진전되면, 주요 남북 간 사업을 재개하자는 게 당시 남북 정상 간 공감대였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불발의 1차적 원인도 결국 한미워킹그룹이 아니라 비핵화 조치가 부족했던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한미워킹그룹이 없어진다고 해도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그대로”라면서 “대북제재가 완화되지 않은 원인이 한미워킹그룹에 있다는 식의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