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소식에 일희일비 말아야... 다른 임상시험들에 영향"

입력
2020.06.18 17:50



염증을 줄이는 스테로이드 약물인 ‘덱사메타손’이 영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환자의 사망을 줄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에서도 해당 약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부 제조사는 주가가 하루 만에 상한가인 30% 가까이 뛰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아직 확실히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치료제 소식에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자칫 국민이 방역수칙 준수에 소홀해지거나 현재 상황이 단기간에 종료될 수 있다고 오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방역당국의 치료제에 대한 언급은 이미 진행하고 있는 임상시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덱사메타손의 신종 코로나 치료효과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중환자의 사망 위험률을 33%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산소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사망 위험률도 20% 감소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며 세계보건기구(WHO) 수장이 직접 “매우 반가운 소식”이라는 평가까지 내놨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17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덱사메타손 임상시험에 대해 “이것은 중증을 앓는 환자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라고 밝혔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도 이날 “덱사메타손의 신종 코로나 치료제 추천 여부를 검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방역당국과 의료계는 신중한 입장이 많다. 덱사메타손이 바이러스 증식 자체를 억제하는 항바이러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덱사메타손은 신종 코로나 환자의 체내에서 벌어지는 염증반응을 억제해서 호흡부전을 차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만 등 만성질환자가 많은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중환자의 사망을 막는 효과가 있으나 한국에서도 같은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 치료제로 기대를 모았던 약물은 이전에도 많았다.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라고 불렀던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신종 코로나 억제 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부작용은 심하다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됐다. 결국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최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에 대한 신종 코로나 치료제 긴급사용승인을 철회했고, WHO도 여러 국가가 참여한 공동임상시험을 중단했다.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역시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관련해 “국내에서는 최근 환자의 급속한 감소와 부작용 우려, 효과가 미미하다는 이유 등으로 임상실험도 사실상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 "임상시험에 영향 줄 수 있는 말 조심해야"

의료계에서는 국민은 물론 방역당국과 언론 모두 신중하게 연구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감염내과 교수는 “사망률을 낮추는 약물에 대한 대규모 연구는 처음이니 덱사메타손 연구결과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중동호흡기중후군(MERSㆍ메르스) 유행 당시에도 스테로이드 치료가 고려됐지만 결국 치료제로 인정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국내 임상시험이 중단됐다고 설명한 방역당국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작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부작용이 크다는 논문은 문제가 많다는 이유로 학술지에서 게재 철회됐고 신종 코로나 치료에 사용하라고 권고한 대한감염학회의 입장도 바뀌지 않았다”면서 “방역당국의 언급 때문에 국내에서 진행 중인 다른 임상시험들도 환자들이 빠져나갈까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임상시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말은 조심해서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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