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먼저 인정받은 ‘김해김’ 김인태 디자이너
“매장 홍보를 한 적도 없는데 지방에서 올라온 고등학생 2명이 10만원이 넘는 티셔츠를 한 시간 고민하다 사갔다고 해요. 놀랍고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여성복 브랜드 ‘김해김’의 김인태(33) 디자이너는 국내에선 정식으로 활동해 본 적이 없다. 지난 2014년 패션강국 프랑스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줄곧 파리에서 생활해 왔다. 지난 6월에야 서울 용산구에 국내 첫 매장 ‘에스파스 김해김’을 열었다. 한국에서 따로 자신의 브랜드를 홍보하거나 옷을 판매한 적이 없었는데 10대 고객들이 먼 걸음을 해준 것에 무척이나 놀랐다고 했다.
김 디자이너는 국내보다 프랑스에서 먼저 인정받으며 주목받았다. 2014년 김해김을 출시할 당시 정식으로 파리컬렉션 무대에 서지는 못했지만, 쇼룸(각종 제품을 전시, 판매 등을 하는 장소)을 통해 과감하면서도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눈길을 받았다.
올해 초 까다롭기로 유명한 ‘파리의상조합’에 국내 최연소 디자이너로 정회원이 됐다. 파리의상조합은 파리컬렉션을 주관하고 있어서 전 세계 패션디자이너들이 정회원이 되길 꿈꾸는 곳이다. 국내에선 우영미, 정욱준 디자이너가 정회원이다.
9월에는 ‘2020 봄여름(S/S) 파리컬렉션’에 정식 데뷔했다. 한국에서 유행어처럼 퍼진 ‘관종’을 주제로 무대를 구성했다. 모델들이 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링거폴대’를 끌거나 ‘셀카봉’을 든 채 워킹하는 모습은 파격이었다.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아픈 사람을 모욕했다며 인스타그램에 악플이 2,000개 이상 달렸어요. 하지만 현상 하나를 전체로 판단하지 말라고 답했죠. 김해김 로고가 적힌 비타민 수액으로 사람들에게 영양제가 되고 싶다는 메시지였어요. 긍정적으로 보면 많은 관심을 받았으니 ‘관종 콘셉트’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해요(웃음).”
솔직하고 거침없는 표현은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젊은 디자이너다웠다. 그러나 김해김의 내면에는 한국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은 디자이너의 욕심이 담겼다. 김해김이라는 문패도 자신의 본관인 ‘김해 김’에서 따왔다. 어릴 때 보고들은 영향이 고스란히 작품 세계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 그는 할머니가 만드는 한복을 곁눈질로 배우며, 인형에 한복을 만들어 입히곤 했다. 그의 패션쇼에 저고리와 한복 소재의 의상들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국내에서 대학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도 다니지 못하고 자퇴했다. 스무 살 때 고 앙드레김 디자이너를 무작정 찾아갔다. “제자로 받아달라”며 몇 번씩 문을 두드렸다. 앙드레김은 “공부하지 않으면 자리는 없다”며 디자인 학교인 ‘에스모드 서울’을 소개했다. 이곳에서 공부하다 파리로 날아가 의상학교 ‘에스모드’와 ‘파리 스튜디오 베르소’에 편입했다. 졸업 후에는 당시 명품브랜드 ‘발렌시아가’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니콜라 게스키에르(현 루이비통 수석 디자이너) 밑에서 일했다.
그는 지난달 제15회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수상자로 선정됐다. 디자인 창작 활동을 위한 후원금 10만달러(약 1억2,000만원)와 국내외 홍보, 사업 지원을 받게 된다.
“파리의상조합에서 정회원 심사를 받는데 ‘너한테 5분 줄 수 있다’며 반말투로 말하더라고요. 기분 나빴지만 꼭 해내겠다는 오기가 생겼죠. 결국 2시간 동안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됐어요. 10년 안에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매장을 100개 이상 늘리는 게 꿈이에요.”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