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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미덕을 담은 연주

입력
2025.01.25 04:30
19면

음악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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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mho Cultural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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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게도 대학 캠퍼스 안에 자리 잡은 콘서트홀이 있다. 음악계에선 유망주들의 고향이라 일컫는 금호아트홀 연세는 주요 시리즈 중 하나인 '아름다운 목요일'을 스물셋의 피아니스트 김송현의 음악세계로 펼쳐냈다. 금호아트홀에선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독특한 안내방송을 접할 수 있다. 조명의 방향이 반대로 전환되면서 객석이 어두워지고 무대가 밝아지면, 상주 음악가들의 목소리가 콘서트홀을 정답게 공명시킨다. 클래식이라는 고전을 현대에도 공들여 지탱하는 젊은 활력을 만끽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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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송현은 이 공연의 주제를 '자연'으로 아울렀다. 존 케이지의 <풍경 속에서>, 베토벤의 소나타 <전원>, 버르토크의 <야외에서> 등을 선곡해 청중의 의식을 밀폐된 고립의 공간에서 확 트인 바깥 세계로 확장시켰다.

연주자의 특장점은 자연의 생명력을 담고 있는 베토벤 소나타 <전원>에서 만개했다. 1악장의 첫 주제는 그 곡의 전체적 인상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해서 연주자들은 시작부터 청중에게 뚜렷한 존재감을 각인하려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김송현은 과시하거나 서두르지 않았다. 저음역에서 반복되는 왼손의 잔잔한 박동을 타고 오른손이 마치 대지에 씨앗을 뿌리듯 서서히 기지개를 폈다. 주요 주제를 연결하는 경과구에선 발아의 과정이 펼쳐졌고, 본격적 이야기는 제2주제에 가서야 꽃을 피웠다. 이렇듯 차분히 빌드업하는 과정에서 스물셋 답지않은 고유의 공력이 느껴졌다. 덕분에 베토벤이 의도했을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배가되었다.

판이한 질감을 동시에 구현하기 녹록찮은 장면에서도 김송현은 정반대의 터치를 훌륭히 뽑아냈다. 한 손은 짧은 스타카토로 통통 튕겨야 하고, 다른 손은 호흡이 긴 레가토를 지속시켜야 할 때, 대개의 연주자들은 페달의 조력으로 쉬운 길을 가려 한다. 하지만 김송현은 일부러 번거로운 방식을 택했다. 한 건반을 짚은 손가락을 약지에서 새끼 손가락으로 일일이 바꿔가면서 고음역의 바깥 소리를 길게 유지했다. 요령보단 정공법을 택해 고마웠다.

연주자가 음악을 만들어 가는 방식을 조각과 소조로 구분하곤 한다. 누군가는 거대한 추상에서 구체적 세부로 세공해 들어가는가 하면, 누군가는 미세한 디테일에서 출발해 우람하게 몸집을 불려 나간다. 그런데 김송현은 중립을 견지한다. 탐미에 현혹되지 않고 절정의 장면에서도 장렬히 산화하지 않는다. 이 공연의 주제인 자연의 미덕처럼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작곡가가 오선지에 음표를 기입했다고 일일이 다 내뱉지 않고 음표를 머금어 삼킬 줄 안다. 덕분에 음색이 무르익는다. 청중에겐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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