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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확정의료 뒤 극단 충동 세배 줄어"···844명 트랜스젠더 연구 결과 나왔다

입력
2025.01.20 15: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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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기록 기반' 국내 첫 대규모 연구
"성별확정의료 조치 평균 24세 시작"
성소수자 의료 연구·홍보 모임 발족

한국트랜스젠더건강코호트연구(KITE) 연구진과 행사 참여자들이 18일 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 LGBTQ+(성소수자) 센터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현종 기자

한국트랜스젠더건강코호트연구(KITE) 연구진과 행사 참여자들이 18일 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 LGBTQ+(성소수자) 센터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현종 기자

사회적 차별과 성별 위화감 탓에 우울감에 시달리는 트랜스젠더들이 성별확정(성전환)의료를 받고 자살 충동이 세 배 가까이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의무 기록이 확인된 트랜스젠더 844명의 생활·건강 현황을 추적한 국내 최대 규모 표본조사에서, '성별확정의료 접근성 개선 필요성'이 재확인됐다.

국내 연구진이 1,000명에 달하는 트랜스젠더의 건강 실태를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어둠 속에 갇혀 있던 '국내 성별확정의료 지형'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무기록 기반 첫 연구

이선영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가 18일 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 LGBTQ+(성소수자) 센터에서 한국트랜스젠더건강코호트연구(KITE)의 2024년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작가 태평 제공

이선영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가 18일 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 LGBTQ+(성소수자) 센터에서 한국트랜스젠더건강코호트연구(KITE)의 2024년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작가 태평 제공

한국트랜스젠더건강코호트연구(KITE)는 지난 18일 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 LGBRQ+(성소수자) 센터에서 '2024년 트랜스젠더 코호트 구축 및 건강 추적관찰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참여 의료기관 8곳의 의무기록을 통해 성별확정의료 경험이 확인된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이분법적 성별 규정에서 벗어난 정체성) 844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10월 진행됐다. 기존 국내 트랜스젠더 건강권 연구가 '응답자 진술'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병의원 의무 기록을 바탕으로 답변 신뢰도를 확보한 셈이다. 표본 크기도 역대 연구 중 가장 많다. 이선영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등 의료진 9명이 참여했다.

KITE에 따르면 호르몬 요법을 받은 비율은 98.5%(831명)였다. 성별확정수술은 45.3%(382명)가 경험했다. 트랜스젠더 여성 442명 중 25.1%가 고환절제술을 받았고 △질형성술 17.2% △유방확대술 11.3% 비율로 수술대에 올랐다. 트랜스젠더 남성 258명의 수술 경험은 △유방절제술 73.3% △자궁절제술 55.4% △난소·난관절제술 44.2% 등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절대다수는 성별확정의료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호르몬 요법에 '만족했다'고 답변한 비율은 90.5%(만족 34.4%·매우 만족 56.1%)에 달했다. 성별확정수술 일부인 생식샘(고환·난소·난관) 제거는 트랜스젠더 남성 83.9%와 여성 86.6%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유방 절제·확대 만족도도 남성 79.0%, 여성 73.2%로 높았다. 다만 생식기 형성 수술 만족도는 남성 52.0%, 여성 65.2%로 비교적 낮게 조사됐다.

의료 조치 뒤 자살 충동 급감

한국트랜스젠더건강코호트연구(KITE) 2024년도 조사 결과 발표 행사 안내판이 18일 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 LGBTQ+(성소수자) 센터 강당 앞에 설치되어 있다. 김현종 기자

한국트랜스젠더건강코호트연구(KITE) 2024년도 조사 결과 발표 행사 안내판이 18일 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 LGBTQ+(성소수자) 센터 강당 앞에 설치되어 있다. 김현종 기자

가장 눈에 띈 결과는 자살 충동 감소였다. 응답자 32.6%가 "자살을 시도한 적 있다"고 답했는데, 이 중 69.3%가 "성별확정의료 조치 전에만 극단적 시도를 했다"고 답했다.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트랜스젠더 약 3분의 2가 성별 위화감을 해소한 뒤 정서적 안정을 보인 셈이다. 다만 "성별확정의료 뒤에도 자살 시도를 했다"는 응답률(9.9%) 역시 일반 국민(약 1.7%)에 비하면 다섯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성별확정의료 경험 시기는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트랜스젠더들 대다수가 12세쯤 자신의 성정체성을 자각했으나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시기는 20세 전후였다. 실제 의료 조치는 20대 중반에 들어서야 시작됐다. 이 교수는 "모든 트랜스젠더가 성별확정의료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작 시기가 늦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 적용 등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ITE는 이번 조사 응답자를 바탕으로 계속 추적 조사를 이어갈 구상이다. 일단 향후 2개년(2025, 26년) 연구 계획이 확정됐다. 응답자들에게 직접 호르몬 농도 검사를 하는 등 조사 범위도 늘릴 예정이다. 연구에 참여한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여건이 허락된다면 10년차 넘게 추적 관찰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의료연구회도 정식 출범

황나현 서울 강동성심병원 LGBTQ+(성소수자)센터 교수가 18일 해당 병원에서 한국트랜스젠더건강코호트연구(KITE) 2024년도 조사 결과 발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작가 태평 제공

황나현 서울 강동성심병원 LGBTQ+(성소수자)센터 교수가 18일 해당 병원에서 한국트랜스젠더건강코호트연구(KITE) 2024년도 조사 결과 발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작가 태평 제공

이날 강동성심병원에서는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KALM) 출범식도 진행됐다. 2010년대부터 산발적으로 관련 연구·홍보를 이어오던 의료진 10명이 정식 연구회를 발족하는 행사였다. 해당 연구회에는 KITE와 강동성심병원 LGBT+ 센터에 속한 의료진 상당수가 참여한다.

연구회 목적은 그간 사회적 혐오와 무관심 탓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건강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던 상황을 개선해나가는 것이다(▶관련 기사: 트랜스젠더 의료는 없다). KALM 대외협력위원을 맡은 추혜인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의사 국가고시에 성소수자 환자를 대하는 기본적 태도 관련 문항을 반영하도록 노력하는 등 인식 확산을 위해 애쓰겠다"고 밝혔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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