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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 "검·경·공수처에 협의해 영장 청구하라 한들 가능성 없다고 봐야"

입력
2024.12.1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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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심사, 결과적으로 수사 방향 결정 역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정다빈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정다빈 기자

현직 부장판사가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 관련한 중복 영장 청구 문제에 대해 "법원에서 피고인별로 집행 기관을 달리해 발부하는 게 오히려 바람직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법원에서 이미 발부한 영장이 있더라도, 더 적합한 수사기관이 유사 취지의 영장을 중복 청구했다면 추가 영장 발부도 가능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방법원 소속의 A부장판사는 11일 법원 내부 게시판(코트넷)에 '수사관할권의 중첩과 영장심사 범위'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경찰 관련자, 검찰이나 법무부 관련자, 고위공직자가 모두 범행에 관련돼 있는 경우에 경찰, 검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각기 수사를 하겠다고 영장을 신청하거나 청구하고 이들에게 각기 수사권이 있는 것을 가정해보겠다"고 운을 띄웠다.

그러면서 "이런 경우에 같은 내용의 여러 개 영장 청구를 받은 법원은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면서 "위 수사 주체들에 협의해서 청구하라고 한들,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같은 유권해석이 내려지지 않는 한 이들이 스스로 협의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겠다"고 단언했다. 기관 간 중복 수사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선, 현실적으로 법원이 교통정리를 해줄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A부장판사는 이어 "수사 주체와 피의자 사이에 공정한 수사가 가능할지 염려되는 정황이 드러나는 경우, 다른 수사 주체가 적극 수사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데도 법원이 이들과 밀접한 수사 주체에 영장을 발부해 수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외관상 부실수사 우려를 법원이 방조하는 측면이 있다"며 법원이 한 사안에서도 피고인별로 가장 적합한 수사 주체를 골라 영장을 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어느 수사 주체에서 청구한 영장을 발부했다고 해서, 다른 기관에서 수사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엔 어느 하나의 영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수사 주체에 발부되도록 하더라도 그것이 헌법이나 형사소송법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오히려 법원의 역할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중복 청구' 문제만으로 영장을 기각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고 짚었다.

A부장판사는 또 "법원이 수사 지휘권자는 아니지만, 영장심사를 통해 결론적으로 수사 방향이나 흐름을 결정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며 "엄연히 헌법과 법률이 법원에 부여한 권한이자 사명"이라고 밝혔다. 다만 "제대로 된 검토 없이 다소 즉흥적으로 떠오른 것이라 과연 타당한지, 실무적으로 가능한지는 자신하지 못하겠다"는 단서를 붙이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9일 검·경에 비상계엄 사건의 수사 이첩요구권을 행사했다고 밝히면서 "공수처가 강제수사를 위해 다수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으나 '유사 내용의 영장이 중복 청구되고 있으니 검찰·경찰·공수처가 협의를 거쳐 조정한 후 청구해 달라'며 기각했다"고 밝혔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같은 날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상계엄 관련 영장이 기각된 것과 관련한 정청래 법사위원장 질문에 "군검찰을 포함해 검찰, 경찰, 공수처가 서로 수사권을 주장하는 비정상적 상황에 대해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어느 기관에서 수사할 수 있도록 인정할 것인지, 그에 따라 영장을 발부할 것인지 굉장히 중요한 재판 사항"이라고 말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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