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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욕하고 미국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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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만 잘래요. (미국의 다음 대선이 있는) 2028년에 누가 나 좀 깨워줘요."
최근 미 뉴욕타임스에 실린, 우리로 치면 '독자에게서 온 편지'쯤 되는 코너에 소개된 글 일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한 달. 막상 뚜껑 열어보니 석패도 아니었거늘, 어지간히 충격이 큰 반(反)트럼프 진영은 아직도 '이 모든 게 꿈이었다면' 한다. 2001년 만평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앤 텔네이스는 대선 다음 날 워싱턴포스트에 횃불을 끄고 캐리어를 끈 채 떠나는 자유의 여신상을 그렸다. 만평의 제목은 "다 끝났어(The End)."
잘나가던 남의 불행을 은근히 고소해하는 감정을 뜻하는 '샤덴프로이데'란 용어가 있다. 고약한 즐거움이랄까. '트럼프의 미국'이 이 묘한 감정을 소환했다. 트럼프 당선(2016년)→트럼프 선동 아래 극성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2021년)→다시 트럼프 시대(2024년)까지. 민주당 집권 8년에 대한 분노가 아무리 컸어도 트럼프 같은 정치 초짜한테 덜컥 정권을 쥐어주더니, 초유의 대선 불복·폭력 사태로 그 대단한 미국이 국제적 망신을 당한 것 아니겠냐고 웃으며 혀를 찬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그 난리를 치고도 다시 트럼프라니. 막말, 성추문, 탄핵소추만 두 번, 대선 뒤집기 시도, 유죄평결…. 돈뿐 아니라 법도 가지고 노는 인물한테 다시 백악관을 허용할 수가 있다니. '바이든 끝, 행복 시작'을 외치며 우리 좋았던 때로 돌아가자는 스트롱맨을 재평가한 미국인들과, 희대의 스캔들 메이커를 3차례나 대선 후보로 떠받든 공화당을 속으로 조롱했다. '와, 우리(정치)도 그 정도(막장)는 아닌데.' 알다가도 모를 아메리카. 세계 최강국을 자임하는 미국 팔자, 미국이 꼬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2월 3일부로 딴 나라 조롱과 걱정을 거뒀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보다 계엄을 선포한 이유에 더 놀랐다. '야당의 폭거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하여.' 하버드대 교수들(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렛)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다. 자신과 다른 집단과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가 전자라면, 주어진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가 후자다. '인생 책'으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를 꼽는 윤 대통령이 한 번은 들췄어야 할 책이다. 이미 늦어버렸지만.
군사 정권도 혀를 내두를 만한 포고령을 공표하는 등 그 시대착오에 할 말을 잃은 사람이 많다. '와, 우리(정치)가 그 정도(막장)였나.' 국민이 느낀 자괴감을 가늠하기 어렵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자 한 명이 관용과 자제라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두 불문율을 산산조각 냈다. 세계에서 가장 견고해 보였던 미국 민주주의가 짓밟힌 모습을 손가락질하고, 역시 우리나라 만세를 외쳐 온 국민을 망신스럽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행복한 국민은 저마다의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국민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불행하다. 폭주하는 권력자가 그렇게 만든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에서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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