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삼국유사'는 함께 읽어 즐겁고 유익한 우리 민족의 고전이다. 온갖 이야기 속에는 오늘날 우리 삶의 모습이 원형처럼 담겼다. 이야기 하나하나에 돋보기를 대고 다가가, 1,500여 년 전 조상들의 삶과 우리들의 세계를 함께 살펴본다.
일본에 경계감 잃지 않은 일연
삼국유사 곳곳 일본 관련 기사
만파식적 감춘 원성왕의 지혜
일연 스님이 일본에 대해 괘념(掛念)한 것은 그들과 두 번의 전쟁을 치르고 난 다음이었다. 몽골이 고려를 앞세워 처음 일본을 친 것은 1274년으로 쿠빌라이 칸으로서는 제국의 정점을 찍는 최후의 사업이건만 실패로 돌아갔다. 두 번째 원정인 1281년, 일연은 원정을 준비하는 병촌에서 왕과 함께 지냈다. 첫 실패 이후 몽골제국 군대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단단히 준비한 두 번째 원정은 어이없게도 더욱 참혹하게 졌다. 병촌의 일연은 누구보다 그 상황을 소상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일본이라는 섬나라가 만만치 않아 보였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삼국유사를 다시 보면 뜻밖에 일본과 관련된 기사가 자주 눈에 띈다. 어디나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그려진다. 물론 대책 또한 단단해야 하는데, 그 백미는 만파식적이다. 이 피리를 불어 얻는 세 가지 효과 가운데 '풍정파평(風定波平)'이 있다.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진다'는 이 말은 여몽 원정 연합군이 얻어맞은 바람의 쓰라린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그것을 일본에서는 신풍(神風) 곧 가미카제라 기리고 있다. 기실 그것은 신의 바람이 아니라 때마침 불어온 태풍이었다.
자연과학에 어두웠던 시절, 태풍의 발생 전후를 모르니 하릴없이 당하고 난 뒤 신의 바람이 자기편이라 자랑질하는 저들에 맞서, 그것은 폭력일 뿐 세상은 평화가 먼저라며 점잖게 타이르는 것이 우리의 만파식적이다.
삼국유사 속의 만파식적은 줄곧 평화의 도구였다. 국경에서 납치된 화랑 일행을 구출해 온 일로 '만만파파식적'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더할 나위 없는 만파식적이라는 뜻이다.
신라 하대에 들어설 무렵, 원성왕 또한 만파식적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다. 왕은 위기 때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울어 가는 신라를 다시 세우려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신라의 영조'라 부르는데, 아버지인 효양 대각간이 궁중에 보관하던 만파식적을 아들에게 준 덕분에 '하늘의 은혜를 두터이' 받았다는 것이다. 요즘말로 강력한 '아빠 찬스'의 원조는 바로 이 원성왕이다. 다만 그는 자신과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다음 이야기가 그런 원성왕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왕이 된 다음 해, 곧 786년 10월 11일이었다. 일본의 왕이 사신을 보내왔다. 사실 저들은 신라를 치고자 하였으나, 신라에 만파식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물러갔었다. 그런 다음 사신에게 금 50냥을 바치고 피리를 보고 오라 한 것이다. 왕은, "짐도 윗대의 진평왕 때 있었다고 들었을 뿐이오.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오"라고 했다. 거짓말이다. 피리는 신문왕 때 나왔고,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다음 해 7월 7일이었다. 다시 일본의 왕은 사신에게 금 1,000냥을 들려 보내며, "과인이 신기한 물건을 보고 돌려주려 합니다"라고 청하였다. 보는 값이 무려 20배나 뛰었다. 그러나 왕은 저번처럼 사양하면서 은 3,000냥을 사신에게 내려주었다. 가지고 온 금은 돌려주고 받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원성왕은 거짓말로 둘러대고 돈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토록 만파식적을 감추려는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나라의 보배란 그냥 널려 있지 않다. 보배는 가치를 알아볼 때만 보배다. 희귀하고 가치 있는 보배는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살린다. 그런 보배를 함부로 내돌려서는 가치를 잃게 마련이다. 원성왕은 만파식적이 그런 보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이 보배이고 그것을 어떻게 써야 가치 있는지 이해하는 것. 모름지기 지도자가 알아야 할 가장 소중한 덕목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 수중의 만파식적보다 적이 내놓는 금 1,000냥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원성왕은 금 1,000냥을 들고 오자 그것을 받기는커녕 도리어 덧보태 은 3,000냥을 준다. 거절하되 다른 외교적 분쟁을 막고, 내 보배를 확실히 지키는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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