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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돌려차기남이 몰랐던 것…"반성없는 반성문 내면 오히려 중형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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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는 이리 많은 징역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피해자가 너무나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것을 보면, 솔직히 피해자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낸 진단서, 소견서, 탄원서를 다 들어주는(믿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산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폭행한 뒤 성폭행을 시도한 '부산 돌려차기' 범행을 저지른 30대 남성 이모(31)씨가 선고 전 항소심 재판부에 낸 반성문 가운데 일부다. 이씨의 반성문 내용이 알려지면서 세간에선 "이런 반성문으로도 감형이 된다니 부당하다"는 비난도 들끓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다행히도 이런 반성문은 감형에 아무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이는 오히려 '중형'만 불러올 가능성이 큰 사례로 분류된다. 부산고법 형사 2-1부(부장 최환)는 지난 12일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1심에서 선고한 징역 12년보다 형량이 8년 더 늘었다.
대검찰청이 지난 3월 발표한 주요 성범죄 판결문 91건 분석 결과를 보면, 피고인에 대해 '반성 의심 또는 반성 없음'이라고 판단한 경우가 35건이었다. 대검은 재판부가 피고인이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이유에 대해 "수사 또는 재판 중의 변명과,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등 죄질이 불량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성 없는 반성문'은 오히려 가중 처벌을 불러왔다. 대검은 "피고인의 변명 취지나 피해자에 대한 태도 등을 근거로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중형을 선고한 사례가 다수였다"고 덧붙였다.
대검이 예로 든 반성 없는 반성문 사례를 보면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의 아동·청소년을 성폭행한 피고인이 '피고인들과 합의된 관계'라고 주장한 경우(징역 20년 선고) △13세 친손녀를 수회 간음한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범행을 부인한 경우(징역 10년 선고) △수년간 친딸들을 강간한 피고인이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있지만 진술 및 태도를 볼때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경우(징역 20년 선고) △수년간 의붓딸을 강간하고 의붓딸의 친구를 강간해 두 피해자를 자살하게 한 피고인이 모든 범행을 부인하고, 필요에 따라 일부만을 인정해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뉘우치지 않고 있는 경우(징역 25년 선고) 등이다.
재판부가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고 판단한 경우는 주로 초범이고 공탁 등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자백까지 함께한 사례다. 대검이 판결문을 분석한 91건 중 10건은 재판부에서 피고인에 대해 '반성 있음'으로 판단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피해자가 있는 범죄에서 제일 중요한 양형 요소는 피해자의 용서와 합의"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하며 재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반성문은 피해자의 용서와는 거리가 멀다. 실제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A씨도 이씨가 항소심 재판부에 냈다는 반성문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며 "다리가 마비되고 온몸이 멍투성이였을 때보다 피고인이 꾸준히 내고 있는 반성문을 읽는 지금이 더 아프다"며 "반성문이 감형의 사유가 되나, 언제쯤 이 가해는 끝이 날까, 저는 언제까지 고통받아야 하나"라고 토로했다.
'재범 가능성'도 재판부에서 유심히 보는 양형 요소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는 것이다. 반성문 대행업체 사이에선 '클리셰(정형화된 방식)' 처럼 쓰이는 피고인의 불우한 가정환경, 어려운 경제상황 역시 사안에 따라 재범 가능성을 높게 판단할 요인이 될 수 있다. 예컨대 경제 상황이 어려워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게 된 피고인이 반성문에서 어려운 가정형편을 언급하며 선처를 호소하면 재판부에선 재범 우려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앞으로 직업을 가지게 될 경우, 내가 노력한 것에 비해 많은 보상을 받는 직업에 대해 미리 경계하고 주의하겠다"고 쓴다면 재판부가 재범 우려를 낮게 판단할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대검이 주요 성범죄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꼼수 감형 시도에 엄정대응하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던 이유는 '감형 패키지(반성문, 탄원서, 심리교육수료증 등)', '반성문 대필' 등의 '감형 상품'을 판매하는 이른바 반성문 대행업체들이 횡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다. 이들 업체는 의뢰인들이 자신들이 대신 작성해 주는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해 유리한 처분을 받았다거나, 감형받았다는 점을 홍보했다. 하지만 대검은 "기부자료나 반복적인 반성문 제출을 근거로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을 인정해 양형이유로 설시한 판결문은 없었다"고 분명히 했다.
현재도 '반성문 대행'으로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수십 개 업체가 나온다. 평균 비용은 장당 5만 원선이며, 성범죄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한 업체는 1장당 11만 원을 받고 반성문을 써준다. 눈에 띄는 점은 이들 업체가 반성문 작성 전 피고인에게 요구하는 필수 내용이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 '어떻게 재범 가능성을 낮출지'보다 대부분 피고인의 '어린 시절 불우했던 가정 환경', '현재 경제 상황' 등이라는 점이다. 앞선 대검 분석 결과를 보면 정반대의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큰 항목이다. 이를 시인이라도 하듯, 한 업체는 홍보 문구에 "반성문은 양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서도 "하지만 제출하지 않는 것보다는 제출하는 것이 낫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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