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탐욕에?' 5월 라면값 인플레, 14년여 만에 최고

입력
2023.06.05 14: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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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13% 상승... 2년 전보다 24%↑
美 '그리드플레이션' 논란 점화 가능성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라면 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라면 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라면값이 1년간 13% 넘게 비싸졌다. 14년여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기업이 상품가격 인상 핑계로 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미국의 ‘그리드플레이션(기업 탐욕에 의한 물가 상승)’ 논란이 한국에서도 점화할 조짐이다.

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라면 소비자물가지수는 124.04로 1년 전보다 13.1%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2월(14.3%) 이후 14년 3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작년 9월에만 해도 3.5%에 머물렀던 라면 물가 상승률은 10월 11.7%로 껑충 뛴 뒤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 10%선을 넘고 있다.

가파른 라면 물가 상승이 최근 1년간만 일어난 일도 아니다. 소비자물가가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2년 전과 비교하면 24.1%나 차이가 난다.

라면 물가 고공행진은 업계 ‘빅3’의 잇단 가격 인상 때문이다. 작년 9월 농심이 출고가를 평균 11.3% 인상하자 오뚜기가 10월 11.0% 인상으로 뒤를 따랐고, 11월 삼양식품이 마지막으로 값을 평균 9.7% 올렸다.

라면이 도드라져 그렇지 고물가는 가공식품ㆍ외식 업계 전반의 현상이다. 지난달 해당 부문 세부 품목 112개 중 27.7%인 31개의 물가 상승률이 10%를 웃돌았다. 잼이 35.5%로 가장 높고 치즈(21.9%), 어묵(19.7%), 피자(12.2%), 두유(12.0%), 커피(12.0%), 빵(11.5%), 햄버거(10.3%), 김밥(10.1%), 김치(10.1%) 등도 높은 축이었다. 전체 물가 상승률이 3%대 초반까지 내려갔지만 가공식품(7.3%)과 외식(6.9%) 상승률은 여전히 전체 상승률의 두 배가 넘는다. 그마저 작년에 많이 오른 식품가격의 기저효과가 작용한 수치다.

이에 미국과 유럽에서 최근 비등하고 있는 그리드플레이션 논쟁이 한국에도 상륙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드플레이션은 미 물가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작년 민주당 일부가 그 배후로 기업의 탐욕을 지목하며 사용한 용어다. 급등했던 원자잿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는데도 상품 가격이 떨어지지 않자 요즘 거론 빈도가 다시 높아졌다. 국내에서 역시 1분기 농심 등 몇몇 식품업체가 좋은 실적을 거두며 인플레이션 국면에 편승해 이익을 부풀렸다는 비판 대상이 됐다. 비쌀 때 사둔 원재료 재고가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는 것 등이 업체 측 항변이지만, 물가 안정을 위기 극복의 우선 과제로 보고 있는 정부가 이미 개입을 시도하고 있는 데다 분위기가 나빠질 경우 불매 등 소비자 저항 움직임이 조직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세종=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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