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주워 치매 노모와 사는데"... 알코올중독 동생 목에 쇠사슬 채운 사연

입력
2023.06.04 17:30
수정
2023.06.04 18:5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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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아파트 놀이터서 발견돼 신고
친형 "동생이 술마시고 사고만" 인정
경찰·지자체, 가족 지원 방안 논의키로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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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쇠사슬이 감긴 채 놀이터에서 발견된 50대 남성을 폭행한 60대 형이 경찰에 입건됐다. 치매 노모와 함께 사는 형은 알코올 중독인 동생이 못마땅해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의정부경찰서는 4일 "A씨를 폭행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6일 의정부 집에서 동생 B씨를 폭행한 뒤 목에 쇠사슬을 채운 뒤 이를 풀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지난달 28일 의정부시내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수상한 중년 남성이 누워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전날부터 내린 비를 맞아 안색이 창백하고 저체온증 증세까지 보였다.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B씨 목에서 잠금장치가 된 1m 길이의 쇠사슬을 발견했다. 119 대원들이 쇠사슬을 절단했지만, B씨 몸에선 외력에 의한 상처도 다수 확인됐다. 신원 확인에 나선 경찰은 B씨가 친형인 A씨와 함께 거주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B씨는 경찰에 “형에게 연락하지 말라”며 귀가를 거부했다.

B씨 반응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A씨를 임의동행해 조사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동생을 폭행하고 목에 쇠사슬을 채운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와 B씨는 치매에 걸린 노모와 동거 중이며, A씨가 폐지를 주워 판 돈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A씨에 따르면 한 달 수입은 40만 원 안팎이었다. A씨는 “일도 하지 않고 매일 집 밖으로 나가 술만 마시고 사고만 치는 동생에게 화가 났다"며 "쇠사슬을 채우면 창피해 나가지 않을 것 같아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형제에 대한 사연을 확인한 경찰은 보호 조치에 나섰다. 알코올 중독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B씨를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시키고, 의정부시에 이들 가족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다. 시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가정문제상담소, 알코올관리지원센터, 의정부종합복지관 관계자 회의를 열어 지원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다만 이들 가족이 기초생활수급자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A씨 가족이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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