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을 욕보인 대장동 비리

입력
2023.05.29 22:00
27면
중앙대 법학대학원 로비에 걸려 있는 故 남전(南田) 원중식 선생의 작품.

중앙대 법학대학원 로비에 걸려 있는 故 남전(南田) 원중식 선생의 작품.

'주역'의 64괘 중 13번째인 '천화동인'(天火同人)과 14번째인 '화천대유'(火天大有)라는 괘상(卦象)을 나타내는 이름이 몇 년 동안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어려운 역경 속에서 사람들의 뜻을 새롭게 모아서 더불어 화합하며 살아가는 '대동사회'(大同社會) 건설의 방도를 제시하는 '동인괘'(同人卦)와 그러한 동인괘의 성과를 토대로 소유한 것이 많아진 풍요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대유괘'(大有卦)에서 괘상의 이름을 빌려 도시 개발하는 법인(法人)의 이름으로 정한 것으로 보아, 그것을 주도했던 인물은 분명 '주역'에 대해 적지 않은 식견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성남 대장동 도시개발 비리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게 된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은 것이다."(불의이부차귀不義而富且貴, 어아於我, 여부운如浮雲)라고 말 한 공자의 결의(決意)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괘상이 아무리 좋은 뜻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하는 사람이 원칙과 정도(正道)를 지키지 않고, 사적이익을 앞세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하게 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주역'의 기본적 가르침을 쉽게 간과한 것 같다.

'동인괘'는 "사람과 함께하되 '들'에서 하면 형통하다(동인우야同人于野, 형亨)"라고 말한다. '들(野)'이란 공개적 장소와 방법, 즉 사람을 모을 때는 반드시 사적인 이익을 배제하고 '공개적'이면서도 '공정성'의 원칙을 견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사적이익을 앞세운 소인(小人)은 언제나 자신의 친분만을 내세워 편당(偏黨)을 짓게 되고, 사회적 혼란을 더 조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유괘'는 "지나치게 성하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비기방匪其彭, 무구無垢)"라고 말하면서, 아무리 풍요로운 시대라고 할지라도 '절제'의 원칙과 도리를 지킬 때만이 그 풍요로움을 정당하게 유지할 수 있고, 사회적 악이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공정성'과 '절제'라는 삶의 기본적 원칙과 덕목을 망각하고, 사적이익을 앞세워 행동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바로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이라 할 것이다. 특히 '공정성'의 원칙과 '준법정신'을 생명으로 하는 법조계에 종사했던 고위직 공무원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볼 때, 법의식과 직업윤리의 부재에 참담함을 넘어 분노를 감출 수가 없다. 이 사건 이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전관예우'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폐해에도 주목해야 하고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관예우'는 권위주의적 발상과 특권의식에 기반한 것으로 '정의'와 '공정'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적 절차를 파괴하고, '승자독식 사회'를 고착화시키는 사회악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개인이 존중받고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민주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법의 권위와 신뢰를 훼손하고 있는 '전관예우' 근절에 있음을 이번 사건을 통해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참다운 '법조인'이 되기를 소원하는 바람을 담아 "법을 평민에게는 엄격히 적용하고 권세와 돈 있는 사람에게는 적당히 적용하면, 천하의 모든 사람이 법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법행우천法行于賤, 이굴우귀而屈于貴, 천하장불복天下將不服)"라고 황제에게 건의를 올린 중국 송나라 소철(蘇轍) 글을 법학대학원 로비에 걸었던 이의 마음을 새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박승현 조선대 재난인문학연구사업단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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