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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후에도 고통받는 ‘이란 히잡 시위’ 마흐사 아미니… “무덤 훼손됐다”

입력
2023.05.24 17:10
수정
2023.05.24 18: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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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유리 파손... 친정부 세력 소행?
정부 단속 강화... 사형 집행도 계속
'공포 정치'에도 히잡 미착용 늘어나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하면서 이란에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킨 마흐사 아미니의 묘지가 훼손돼 있다. 그의 유족이 공개한 사진이다. 트위터 캡처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하면서 이란에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킨 마흐사 아미니의 묘지가 훼손돼 있다. 그의 유족이 공개한 사진이다. 트위터 캡처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묘지가 파손됐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아미니의 죽음은 이란에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키는 기폭제가 됐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안식을 찾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23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아미니의 남동생 아슈칸은 전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유리가 산산조각 나 있는 누이의 묘지 사진을 올렸다. 아슈칸은 이 같은 공격이 벌써 두 번째라면서 “그들이 1,000번을 깨뜨린다 해도 우리는 다시 고칠 것이다. 누가 먼저 지치는지 보자”라고 분노를 표했다.

아미니의 고향이자 그의 묘지가 있는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주(州)의 도시 사케즈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곳이다. 묘지를 파손한 이들의 신원이나 목적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친정부 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유족의 변호인은 “이전에 같은 짓을 저지른 사람들이 한 짓”이라고 밝혔다. 변호인은 또, 이란 정부가 아미니의 묘지에 보호 덮개를 설치하는 일조차 막고 있다면서 “정부가 ‘가게의 문을 닫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탓에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란 반정부매체인 ‘이란인터내셔널’은 “정권에 맞서다가 죽은 사람들의 무덤은 이전에도 정부로부터 견제를 받았다”고 전했다. 히잡 착용 강요에 대항하는 반정부 시위로 사형을 당한 최초 인물인 ‘모센 셰카리’라는 남성도 정부의 방해 때문에 무덤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이후 세워진 묘비마저 파괴됐다고 매체는 설명했다.

정부 탄압에도 “아미니 죽음 잊지 않아”

지난달 29일 이란 수도 테헤란 거리를 한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은 채 걷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이란 수도 테헤란 거리를 한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은 채 걷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아미니의 무덤에 가해진 테러는 그의 의문사 이후 8개월이 흘렀음에도, 이란 사회가 여전히 ‘히잡’이라는 인권탄압의 상징을 두고 격렬한 대립을 겪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있다.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며 몇 달간 지속됐던 반정부 시위의 불길은 다소 사그라든 상태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이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시위 기간 동안 히잡 관련 단속을 느슨하게 시행했던 이란 정부는 최근 고삐를 다시 조이는 분위기다. 지난달 폐쇄회로(CC)TV 등 ‘스마트 감시 카메라’를 도입해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을 적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달 19일엔 미국 등 세계 각국의 만류에도 불구, 반정부 시위 참가자 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데 이어, 이날 또 다른 시위자에게도 사형을 선고했다. 또 아미니 의문사를 처음으로 보도한 언론인들을 조만간 재판에 회부할 계획이라고 미국의소리(VOA)는 전했다.

그러나 이란의 공포 정치 수위가 높아지는 중에도 히잡을 벗거나 가볍게 착용하는 여성은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정부의 히잡 미착용 단속 발표 당시, 이란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히잡을 벗은 사진과 영상을 올리며 정면으로 맞섰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 사는 한 여성은 정부의 위협에 아랑곳없이 히잡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고 BBC에 말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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