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서로 다른 '시대 인식' 방법

입력
2023.05.13 04:40
12면

일본 시민사회는 ‘재난공동체’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시대인식 방법을 갖고 있다. 이번 글로벌 팬데믹에 대해서도 한국 사회는 사회적 성취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지만, 일본 사회는 대형 재난을 힘 모아 극복한 사례로 기억할 것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시대인식 방법을 갖고 있다. 이번 글로벌 팬데믹에 대해서도 한국 사회는 사회적 성취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지만, 일본 사회는 대형 재난을 힘 모아 극복한 사례로 기억할 것이다. 일러스트 김일영

4·19혁명(1960년), 5·18 민주화운동(1980년), 6·29 민주화 선언(1987년), 촛불집회(2016~2017년) 등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시대적 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들이다. 6·25전쟁(1950~1953년)이나 IMF 사태(1997년) 등 어려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들도 있지만, 역시 민주주의를 요구한 시민들의 당당한 집단행동, 그리고 그 결과 맞이한 정치적인 변화를 현대사의 중요한 전기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한국인의 기질에 맞는 것도 같다.

◇한국과 일본의 서로 다른 시대인식 방식

그렇다면 일본 사회는 어떻게 동시대를 인식하고 기억할까? 일본 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역시 패전이다. 제국주의의 야욕에서 비롯된 제1, 2차 세계대전에의 참전, 그리고 미국의 원폭 투하 이후 무조건 항복 선언(1945년)을 기점으로 일본에서는 ‘센젠(戦前, ‘전쟁 전’이라는 뜻)’과 ‘센고(戦後, ‘전쟁 후’라는 뜻)’로 시대를 구분한다. 한국에서 ‘해방 전’과 ‘해방 후’가 전혀 다른 세상인 것처럼, 일본에서도 패전은 사회의 방향성과 가치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전환점이었다. 그런데, 이 패전을 제외하고 일본 현대사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점들이 자연재해 혹은 사회적인 재난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관동대지진(1923년, M8 이상 추정), 한신 대지진(1995년, M7.3), 동일본 대지진(2011년, M9) 등 세 차례의 메가톤급 지진을 빼놓고는 일본 현대사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도쿄올림픽 개최(1964년), 버블 붕괴(1990년대 초반), 옴 진리교 테러 사건(1995년) 등도 자주 거론되는 동시대 일본인들의 기억들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이 현대사를 인식하는 방식이 참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한국인은 민주화 운동이나 민주화 선언 등 진취적이고 명예로운 사건들로 해방 이후 현대사를 기억하고 기록한다. 한국의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성취해 온 과정’이다. 반면, 일본인은 대지진이나 경제 위기, 테러 등 큰 어려움이나 재난 등을 통해 과거를 소환하고 시대를 기억하고 기록한다.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현대사는 ‘재난과 어려움을 하나하나 극복해 온 과정’으로 인식된다.

◇일본 시민사회는 ‘재난공동체’

근대 국가와 내셔널리즘이 태동한 역사적 계기에 대해 연구한 베네딕트 앤더슨은 국가 혹은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국가 혹은 민족이 실은 동일한 언어나 문화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공동체 의식 이외에는 구체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운, 추상적인 관념이라는 것이다. 굳이 이민 국가를 표방하지 않아도 한 나라 안에 여러 가지 언어, 여러 가지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고정관념의 허무맹랑함을 지적하는 ‘상상의 공동체’ 론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혹은 민족은 지금도 건재하는 개념이다. 국가는 여전히 강력한 제도이자 시스템이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국민’ 혹은 ‘동일 민족’이라는 소속 의식을 갖고 산다.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뒷받침하는 공통된 믿음과 집합적인 경험이 여전히 존재하고 기능한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대지진이나 재해를 경험하고 극복한 기억이 시민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굳건히 지지하는 집합적 경험의 중요한 측면이 아닐까 싶다. 일본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상상력’의 핵심은 지진이나 재해에 대한 공통된 경험이라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일본 사회는 ‘재난 공동체’라는 주장을 펴 볼 수도 있겠다.

일본에서는 반세기에 한 번씩은 꼭 발생한다는 메가톤급 대지진까지는 아니어도, 구마모토 지진(2016년, M 7.3), 오사카 북부 지진(2018년, M 6.1), 홋카이도 이부리 동부 지진(2018년, M 6.7) 등 최근 10여 년 동안에도 꽤 큰 지진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지진에 철저하게 대비한 인프라가 있었기 망정이지, 다른 나라에서라면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규모의 지진들이다. 지진뿐 아니라 화산 폭발이나 호우 등 지진 이외의 자연재해도 빈번해서, ‘재난 대국’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있을 정도다. 그러고 보니, 바로 지난주(5월 5일)에도 이시카와 현에서 꽤 큰 규모(M 6.3)의 지진이 있었고, 일주일이 넘게 여진이 계속되는 중이라고 한다. 어떤 일본인에게는 이 지진이 2023년의 가장 큰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진이나 자연재해는 직접 겪어 보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공포와 어려움이 강렬하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서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지진이나 재난에 관한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만화나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 중에 큰 재해나 재난 상황을 다루는 경우가 많은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일본에 살 때에는 지진을 대화의 소재로 자주 삼았다. 지진은 실제로 겪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좀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는 일본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편했다. 일본인은 아니었지만 이 ‘재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의식이 그때는 내게도 있었던 것 아닐까?

지진이나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 수많은 일본 시민들은 스스로 나서 이웃을 돕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은다. 예를 들어, 2016년의 구마모토 지진은 처음으로 큰 진동이 느껴졌던 4월 14일 이후 한 달 가까이 400회가 넘는 여진이 계속되면서 꽤 큰 피해를 입혔다. 사망자가 270여 명, 피난민이 18만 명에 달했고, 피해를 입은 지역도 광범위했다. 지진의 규모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 비할 것이 아니었지만, 상당히 심각한 수준의 피해가 발생했다. 지진이 일어난 직후부터 구마모토 인근에 곧바로 자원봉사자 센터가 설치되었다. 피난소 운영을 돕기 위해 두 팔을 걷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 지역의 상황을 직접 취재하고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시민 동영상 부대 등 자발적인 시민들의 활약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일본 내각부에서 집계한 바에 따르면, 구마모토 지진 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가 11만 명이 넘는다. 이전부터 일본에서는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복구, 지원에 힘을 보태는 문화가 있었다. 자연재해와 관련한 비영리단체에 의료, 복지, 통신 등 전문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시민단체와 지자체, 행정기관도 적극적으로 연계하고 있다. 정치 참여에 적극적인 한국인에게는, 일본 시민사회가 상대적으로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듯 보인다. 하지만, ‘재난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일본 시민들은 헌신적인 시민의식을 발휘하는 적극적인 실천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질질 끌어왔던 글로벌 팬데믹이 드디어 끝나 간다.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가 함께 겪은 사회적 재난이었다. 이 경험이 한국과 일본 각각의 사회에서 어떻게 소환될까? 어쩌면 한국 사회는 이를 정치적인 승리이자 사회적인 성취로 인식할지도 모른다. 반면, 일본 사회는 대지진과 다름없는 대형 재난을 힘을 모아 극복한 사례로 기억할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글로벌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재난이 드디어 ‘극복’과 ‘기억’의 국면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기쁠 따름이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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