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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한 짝 들고 맨발로... 달마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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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經)에 ‘송고위악(崧高維嶽) 준극어천(駿極於天)’이란 말이 나온다. ‘지극히 높아 하늘에 닿는’ 산은 악(嶽)이라 했다. 기원전부터 중원에 오악이 등장한다. 남방까지 영토가 넓어지자 남악은 형산(衡山)으로 바뀐다. 수도가 베이징이 되자 북악에 항산(恒山)이 들어온다. 동악 태산(泰山), 서악 화산(華山)과 중악 숭산(嵩山)은 변하지 않는다. 덩펑(登封)에 숭산 소림사가 있다.
덩펑 시내에서 약 10km 거리에 소림사 입구가 있다. 숭산소림(嵩山少林) 패방이 나타난다. 청나라 황실 후손으로 당대 서화가인 치궁의 필체다. 중국서예가협회 주석을 역임했다. 양쪽에 새긴 선종조정(禪宗祖庭)과 무림승지(武林勝地)가 눈에 띈다. 소림사는 바로 불교 선종의 발상지이자 무술 명승지다. 바위가 패방을 가리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쩌민 전 주석의 글씨다. 소림 문화와 인류 유산을 강조하고 싶었다.
바위를 지나니 자세히 보인다. 기둥에 새긴 대련이 마음에 든다. 필체도 우아하고 내용도 심오하다. 백대의발갱승일화오엽(百代衣鉢賡承一花五葉)을 파헤쳐본다. 백대에 이르도록 가사와 바리때를 계속 받들었고 일화와 오엽을 칭송한다. 선종을 창시한 달마(達摩)가 한 송이 꽃이라는 미화다. 잎사귀는 다섯 갈래로 발전한 유파에 대한 비유다. 천추산하금대사수삼성(千秋山河襟帶四水三城)이 대응한다. 유구한 세월 동안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하 덕분에 요충지라는 자랑이다.
대문에서 소림사까지 전동차를 운영한다. 산보하는 기분으로 걸어도 20분이다. 무술 연습을 만날 수도 있다. 10개가 넘는 무술학교가 있다. 소림사 안에도 있는데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800여 개의 반을 운영하고 있다. 연무장에 꽤 많은 학생이 훈련을 하고 있다. 관광객은 모두 기념사진을 찍는다. 마치 관광상품 같다. 1982년 데뷔 작품이 ‘소림사’인 리렌제(이연걸)처럼 영화배우를 꿈꾸는 듯하다. 초롱초롱한 눈매가 예사롭지 않고 기합 소리도 우렁차다.
천하제일명찰(天下第一名剎) 패방이 나온다. 북위 시대에 천축의 승려 부다바드라(Buddhabhadra)가 왔다. 발타(跋陀)라 불렀다. 효문제의 신임을 받고 불경 번역에 힘썼다. 496년 소림사를 짓고 불교 전파에 공헌했다. 숭산 봉우리인 소실산(少室山)의 울창한 숲에 세웠다. 작명이 참 소박했다. 입적 후 제자들이 흩어져 명맥을 잇지 못했다. 수십 년이 지나 천축에서 온 승려 보디다르마(Bodhidharma)가 복원했다. 바로 달마다. 1,500년 역사를 지닌 사찰로 가는 초입이다. 당시 패방은 아닌데도 기분만큼은 천하제일의 명성을 풍긴다.
산문 편액은 청나라 강희제의 필체다. 옹정제 시대 처음 건축했다. 선종의 주류가 된 소림사는 무림 도장도 겸비했다. 당나라 이세민이 주도한 전쟁에서 공을 세워 번성했다. 송나라 시대에 5,000칸에 이르렀고 승려도 2,000명에 육박했다. 명나라 후기에는 척계광을 도와 남해안에 침입한 왜구를 몰아내는 데 참여했다. 왕조와 결탁하면서 성장했다. 봉건시대가 끝나자 우여곡절도 있었다. 1928년 군벌 스여우싼이 방화를 했다. 군벌 전쟁 와중에 참화를 겪었다. 이때 건물 대부분이 전소되고 유물이 소실됐다. 지금의 소림사는 1980년대에 새로 지었다.
산문을 지나 통로를 따라간다. 무성한 나무 사이에 역대 비석이 줄줄이 차지하고 있다. 2층 건물인 천왕전이 나온다. 단층만 많이 봤던 터라 뜻밖이다. 세로로 쓴 편액이 2층 두공 사이에 걸렸다. 가깝게 가니 보일 듯 말 듯하다. 당대 학자이자 서화가인 추투난이 썼다. 볼수록 단정한 필체다. 문 위에 있는 천하제일조정(天下第一祖庭)은 건륭제의 필체다. 역시 명필이다. 황제나 백성이나 필체만으로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다.
천왕전을 지나면 종루와 고루가 나온다. 둘 다 4층인데 이런 고층을 본 적이 없다. ‘아침 종’과 ‘저녁 북’이라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다. 종루 앞 비석에 눈길이 간다. 태종문황제어서(太宗文皇帝御書)가 제목이다. 당나라 현종의 필체다. 728년에 세웠다. 태종은 황제 사망 후 제례를 위한 존칭인 묘호이고, 문황제는 생전 치적을 평가한 존칭인 시호다. 보통 이세민비(李世民碑)라 부른다. 수나라 말기 민란이 발발해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진다. 이세민을 도운 소림사의 공로를 예찬한 비문이다.
고루 옆에 육조당(六祖堂)이 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문틈 사이로 들여다본다. 정면에 오불(五佛)이 나란하다.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관음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이다. 양쪽에 육조가 봉공돼 있다. 초조(初祖)인 달마와 함께 6대까지 자리했다. 차례로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이다. 왼쪽 벽면에 달마척리서귀도(達摩只履西歸圖)가 그려져 있다 한다. 아쉽게도 마주하기 어렵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림의 제목은 왜 '서쪽으로 돌아갔다'일까? ‘척리’는 신발 한 짝이다. 도대체 왜?
앞마당에 높이 솟은 나무가 대웅보전을 보듬고 있다. 5칸 2층 건물이다. 옛 모습대로 1980년대에 복원했다. 당나라, 원나라, 청나라 시대 비석이 전각 앞에 도열해 있다. 편액은 서화가 자오푸추가 썼다. 중국불교협회와 전국정치협상회의 고위 지도자를 역임해 온 동네에 많이 출몰한다. 석가모니불과 약사불, 아미타불을 봉공하고 있다. 두 제자인 아난과 가섭도 있다. 뒤쪽에 등을 맞대고 관음불이 좌정하고 있다. 대웅보전을 지나니 장경각이 나온다. 1928년 방화로 전소되기 전 수만 권의 서적이 보관돼 있었다.
방장실이 나온다. 방장은 주지를 말한다. 방장이 기거하고 사무 보는 공간이다. 건륭제는 60년의 재위 기간 전국을 여러 차례 순행했다. 딱 한번 제례를 올리려 숭산에 왔다. 1750년 가을이었다. 황제가 도착하자 승려와 백성이 열렬히 환영했다. 크게 기뻐한 황제는 현장에 있던 사람 모두에게 백은 한 량씩을 하사했다. 방장실이 일약 행궁이 됐다. 자연스레 용정(龍庭)이라 불렸다.
당시 가뭄이 극심했다. 밤에 갑자기 큰비가 내렸다. 황제는 기쁜 나머지 한밤중에 시를 썼다. 시비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황제 친필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가까이 가서 위아래로 훑어본다. 육선(六禪) 번역이 어렵다. 소림사 여섯 명의 대사를 이르는 듯하다. 반암(半巖)도 고급스럽다. 반산(半山)은 산 반쪽이 아니라 산허리다. 반암은 산허리의 바위다. 멋진 비유다. ‘숙소림사(宿少林寺)’를 읊어본다.
내일이면 중악 우러를 테니, 오늘 밤은 소림사에서 하루 묵네
明日瞻中嶽 今宵宿少林
마음은 육선 닮아 고요한데, 사찰은 여러 산속에 휩싸여 깊네
心依六禪靜 寺據萬山深
오랜 나무는 여운을 풍기고, 신령한 땅은 석양 따라 서늘하네
樹古風留籟 地靈夕作陰
산허리에 비로 맞장구 치니, 야밤에 창문 열어 시를 읊는구나
應教半巖雨 發我夜窗吟
건륭제의 숙소림사(宿少林寺)
입설정(立雪亭)은 달마정이라고도 부른다. 달마는 소림사에서 9년을 수행했다. 신광(神光)이라는 호를 쓰는 인물이 오랫동안 달마를 신봉했다. 어느 겨울 대설이 내렸다. 아침에 문을 여니 설인(雪人)이 서 있었다. 밤새 눈을 맞은 신광이었다. 불법을 전승해 주길 바라는 간청이었다. 달마는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면 응답하겠다 했다. 불가능한 현상을 핑계 삼았다. 신광은 칼을 들어 왼쪽 어깨를 베어버렸다. 붉은 피가 눈 위로 쏟아졌다. 달마가 외마디를 내뱉었다. ‘혜가(慧可)’, 지혜가 아주 괜찮다는 말이다. 신광은 바로 무릎을 꿇고 말했다. ‘법명을 주시어 감사합니다’. 그렇게 혜가는 이조(二祖)가 됐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소림사 승려는 한 손으로 합장한다. 이조 혜가를 존중하는 표현이다. 입설정 안에 달마를 중심으로 이조부터 오조까지 봉공하고 있다. 육조인 혜능이 없다. ‘보리(菩提)는 본래 나무가 아니라(本無樹)’는 게송(偈頌)으로 유명하다. 게송은 불교 교리를 짧게 시처럼 읊는 형식이다. 혜능의 재능을 알아본 오조 홍인은 가사와 바리때를 전수하고 남방으로 떠나게 한다. 다른 제자들이 해할까 염려했다. 의발(衣鉢) 제자 혜능은 남방에 선종을 전파했다.
가장 뒤에 천불전이 있다. 서방성인(西方聖人) 편액이 걸려있다. 마당에 신발 한 짝 들고 서쪽으로 향하는 달마 조각상이 있다. 육조당에서의 궁금증이 풀린다. 달마는 소림사를 떠나 구름 따라 떠돌다 열반했다. 장례까지 치렀다.
사망 소식을 모른 체 동위(東魏)의 사신 송운이 서역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달마와 만났다. 지팡이 짚고 신발 한 짝만 들고 맨발인 채 서천으로 간다 했다. 만난 사실을 밝히면 곤란해진다 했는데 황제에게 털어놓는다. 거짓으로 속인다고 벌을 받는다. 의견이 분분해지자 황제는 무덤을 확인하라 했다. 시체는 사라지고 신발 한 짝만 남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송운은 누명을 벗었다. 세상은 아미타불의 극락 세계인 서방정토로 갔다고 달마를 칭송했다.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봉공돼 있다. 명나라 시대에 건축됐다. 소림 무술 훈련장이었다. 단련으로 생긴 구멍이 바닥에 드러나 있다. 삼면을 벽화가 둘러싸고 있다. 포로가 된 이세민을 구한 13명의 승려가 있었다. 십삼곤승구당왕도(十三棍僧救唐王圖)가 있다. 오백나한이 부처의 법신인 비로자나불에게 문안하는 장면도 있다. 오백나한조비로도(五百羅漢毗盧圖)다. 명나라 시대에 제작된 진품이다. 동작이나 차림새가 화려하고 완벽한 명품이다.
소림사 서쪽 300m 거리에 탑림(塔林)이 있다. 승려의 부도로 숲을 이루고 있다. 건륭제가 탑이 얼마나 많은지 물었다. 주지가 확실하게는 모른다 했다. 황제가 어명을 내렸다. 탑 하나에 한 명씩 지키라 했다. 500명의 어림군(御林軍)으로도 어림 없었다. 군대를 철수시키며 ‘실로 탑림이로다(實乃塔林也)’라 했다. 모양도 제각각 다양하다. 황제의 에피소드가 거짓이 아니라면 꽤 많이 사라졌다. 지금은 250여 개가 남았다.
소림사 무술관이 있다. 발차기 하는 조형물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다. 100위안(약 1만9,000원) 입장권에 포함돼 있다. 약 30분 동안 소림 무술을 관람할 수 있다. 2층 건물의 공연장이다. 삼면에 관람석이 마련돼 있고 무대와 가깝다. 기합과 동작이 실감난다. 무대 정면은 소림사 산문을 본떠 만들었다. 안에 있는 부처에게 조명이 비치면 공연이 시작된다. 사회자가 등장하면 시작이다.
함성을 지르며 합장한 채 배우가 나온다. 모두 나이가 어린 편인데 무공이 상당한 수준이다. 작대기를 들고 나와 곤술(棍術)을 선보인다. 바닥을 때리거나 허공으로 날렵하게 뻗는다. 몸을 날려 상대를 찌른다. 굉장히 빠른 속도라 무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어서 맨손으로 등장해 무공을 뽐낸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나와서 발차기 시범을 보인다. 사지를 꺾고 다리를 목 뒤로 보내는 동작으로 묘기를 자랑한다. 공중으로 날거나 뛰어다니니 환호성으로 화답한다.
모두 산문으로 들어간다. 사회자가 다시 나오더니 관객 3명을 선발한다. 어린 배우 3명이 먼저 선보이면 관객이 흉내를 내는 코너다. 간단한 동작인데 쉽지 않다. 조금 복잡한 구르기나 공중돌기에는 속수무책이다. 어설프니 폭소가 쏟아진다. 영화라면 유쾌한 코미디다. 배우는 무술을 하는데 관객은 무용이다. 입은 정상이니 기합은 똑같다. 합장도 쉬운 동작이다.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하나씩 받는다.
아이들은 따라 하지 말라는 공연이 이어진다. 온몸의 기를 이마에 집중한다. 세 겹으로 싼 철판을 반으로 토막 낸다. 목 밑에 두 개의 창을 댄다. 두 명이 옆에서 강하게 찌르고 있는데 기를 이용해 창을 구부린다. 삼지창이 등장한다. 창 끝을 배에 꽂고 360도 회전한다. 풍선과 유리가 나와 약간 아리송하다. 뾰족한 물건으로 풍선을 터트리고 유리를 통과시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깜짝 놀랐다. 맨손으로 시작해 창과 삼절곤(三節棍), 쌍칼 등 무기로 시범을 보인다. 출연 배우 모두 나와 단체로 기합을 외친다. 마지막이라 큰 박수다.
소림사를 나와 입구에 있는 패방 앞에 선다. 소림사 셔츠도 한 벌 사서 입는다. 무공을 펼치는 승려 여러 명이 가슴에 새겨져 있다. 관광지에서 옷을 사는 편이 아니다. 사더라도 그 자리에서 입지 않는다. 기념사진도 잘 찍지 않는다. 말로만 듣던 소림사 역사를 두루 살폈더니 기분이 좋았다. 무술 공연도 100점이다. 누구나 소림 무술에 한 번쯤 감동한 추억이 있을 터다. 알찬 공연을 봐서 그런지 마음이 들뜬다. 여행은 정말 구름 타고 날아다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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