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땅 밟은 대만 총통 "미국과 어느 때보다 가깝다"... 중국은 '무력 시위'

입력
2023.03.30 19: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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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순방' 차이잉원, 경유지인 뉴욕서 48시간 일정
중국군, 대만 주변 해역서 사흘 연속 '군사적 압박'
귀국길 미 하원의장과 회동... 미·대만 vs 중국 '긴장'

29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중앙아메리카 순방의 경유지인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9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중앙아메리카 순방의 경유지인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중앙아메리카 순방에 나선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9일(현지시간) 중간 경유지인 미국 땅을 밟으며 '48시간의 뉴욕 일정'을 시작했다. 대만 현직 총통이 경유 방식으로 미국을 '비공식 방문'하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귀국길에 미국 내 대표적인 '반(反)중 정치인'으로 꼽히는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과의 회동이 예정돼 있어 중국의 반발이 상당하다. 대만대협 인근에 군용기와 군함을 보내는 등 중국이 '무력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차이 총통은 "미국과 대만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깝다"고 밝혔다.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차이 총통은 중미 수교국인 과테말라와 벨리즈를 9박10일 일정으로 방문하기 위해 경유 형식으로 이날 오후 미국 뉴욕 JFK공항에 도착했다. 이틀간 이곳에 머무를 예정인 그는 대만계 미국인들과의 만찬에서 "대만은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있다"며 "세계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는 가운데, 대만과 미국,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의 동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세계 안보가 대만의 운명에 달렸다"고도 했다. 미국과의 밀착을 과시하며, 중국에 맞서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실제 미국과 대만 간 관계가 더 두터워질 수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대만 정부가 반도체 기업인 TSMC의 투자 약속을 계기로 이중과세 방지 협정을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며 대만과 미국 간 조세협정 논의가 이번에 이뤄질 가능성을 점쳤다. 대만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때부터 이중과세 문제 해결을 요구했지만, 조세협정은 대만을 주권국으로 인정하는 것이어서 미국은 그간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다.

29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중미 순방길의 중간 경유지인 미국 뉴욕에 도착한 뒤, 그의 숙소인 맨해튼 롯데호텔 앞에서 중국인들이 차이 총통에게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29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중미 순방길의 중간 경유지인 미국 뉴욕에 도착한 뒤, 그의 숙소인 맨해튼 롯데호텔 앞에서 중국인들이 차이 총통에게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물론 중국의 불만 표출도 있었다. 차이 총통이 묵는 호텔 바깥에는 대만 국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그의 지지자들도 있었으나,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든 친중 시위대 수백 명도 몰려들었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대만 자유시보는 "중국 정부 지시로 미국 내 중국 교민이 동원된 것"이라고 전했다. 대만 정부는 차이 총통의 미국 일정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로키(Low Key)' 전략을 취했는데,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차이 총통의 미국 체류를 문제 삼아 대만에 어떤 압력을 가할지는 그가 누구를 만날지, 공개 행사를 벌일지에 달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무력시위 나선 중국… "극단 공격은 안 할 것" 전망도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9일 미국 뉴욕의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9일 미국 뉴욕의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미국·대만과 중국 간 긴장은 고조되는 분위기다. 미 백악관은 "대만 총통이 경유지로 미국을 들르는 일은 드물지 않다"며 "중국이 이를 빌미로 대만해협 주변에서 공격적 활동을 강화해선 안 될 것"이라고 대중 경고를 날렸다. 중국 정부도 "결연한 반격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실제 중국은 대만은 물론, 미국을 향해서도 날을 세우고 있다. 대만 자유시보는 29일 오전 6시부터 24시간 동안 대만 주변 해역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함정 4척을 대만 국방부가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군사적 압박은 27일부터 사흘째 이어진 것으로, 이달 들어 중국 군용기 341대와 군함 109척이 동원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 정부는 또, 미국의 인권 상황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사흘 연속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긴장은 다음 달 5일쯤 최고조로 치솟을 전망이다. 차이 총통은 귀국길에 로스앤젤레스를 들러 연설한 뒤, 매카시 하원의장과 면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매카시 의장은 취임 전부터 "대만을 방문할 것"이라고 공언할 정도로 반중 성향이 강하다. 중국은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질 경우) 미중 관계가 심각한 대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다만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이 이번 회담을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보다는 '덜 도발적'이라고 간주해 극단적 공격을 자제할 것이라는 게 미 정보당국 평가"라고 전했다. 중국의 위협 수준이 너무 높으면, 내년 1월 대만 대선에서 중국에 우호적인 국민당보다 차이 총통이 소속된 민진당에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는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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