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FDA, 펜타닐 해독제 '비처방 판매' 첫 승인... "과다복용 사망은 막자"

입력
2023.03.30 18:30

마약 성분의 뇌 이동 차단 효과 큰 '나르칸'
펜타닐 급속한 확산에 '일반의약품' 지정

미국 제약업체 이머전트 바이오솔루션사가 개발한 마약성진통제 해독제 나르칸의 모습. 필라델피아=AP 연합뉴스

미국 제약업체 이머전트 바이오솔루션사가 개발한 마약성진통제 해독제 나르칸의 모습. 필라델피아=AP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의 과다복용 사망을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의사 처방전 없이도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펜타닐 해독제'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이를 일반의약품으로 처음 지정한 것이다.

접근성 높은 '비강 스프레이' 나르칸, 문제는 가격

펜타닐 오남용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미국의 필라델피아 거리에서 뇌가 손상된 마약 중독자들이 구부정한 자세로 걷고 있다. 이곳은 '좀비 랜드'로 불린다. 유튜브 캡처

펜타닐 오남용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미국의 필라델피아 거리에서 뇌가 손상된 마약 중독자들이 구부정한 자세로 걷고 있다. 이곳은 '좀비 랜드'로 불린다. 유튜브 캡처

29일(현지시간)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 등에 따르면, 미 식품의약국(FDA)은 이날 마약성진통제(오피오이드) 과다복용 해독제인 '나르칸(Narcan)'을 일반의약품(OTC)으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머전트 바이오솔루션사(社)가 개발한 나르칸은 코에 직접 분사하는 '비강 스프레이' 형태로, 처방전이 없어도 이제 미국 내 약국과 편의점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온라인 판매도 가능해진다. 지난달 FDA 전문가자문단이 "나르칸을 OTC로 즉시 승인할 필요가 있다"고 만장일치 권고를 내린 데 따른 조치로, 이런 약물이 OTC 범주에 포함된 건 이번이 첫 사례다.

나르칸은 펜타닐이나 헤로인, 옥시코돈 등 오피오이드 계열 마약에 대해 진정 효과가 큰 날룩손을 유효성분으로 하고 있으며, 2015년 FDA에서 전문의약품으로 승인받았다.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호흡곤란 등 증상을 겪는 사람에게 투여하면 뇌로 이동하는 마약 성분을 신속히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FDA는 "늦지 않게 나르칸을 사용하면 과다복용 환자가 2~3분 내 정상적 호흡이 가능하다"며 "주사 등 전문적 기술 없이도 코에 분사하면 되므로 응급 상황에서 활용도와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가격이다. 현재 처방전과 함께 구입 가능한 나르칸 패키지(8㎎ 용량 스프레이 2개) 소비자 가격은 47달러(약 6만1,000원)이다. 의학계에선 펜타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섭게 퍼지고 있는 만큼, 좀 더 저렴한 값에 판매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제조사는 가격과 관련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2021년 미국 '펜타닐 과다복용' 사망자 10만 명

펜타닐 성분이 포함된 듀로제식 패치. 한국일보 자료사진

펜타닐 성분이 포함된 듀로제식 패치. 한국일보 자료사진

OTC 승인에 매우 엄격한 미국에서 나르칸 시판이 허용된 건 그만큼 펜타닐 폐해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2021년 미국 내 펜타닐 과다복용 사망자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전년 대비 15%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2015~2021년 미국 거주 18~49세 인구 사망 원인 1위도 중증 질환이나 교통사고가 아니라, '펜타닐 중독'이었다. 코카인 등보다는 구매가 쉬워 청소년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졌기 때문이다.

한국도 '안전 지대'는 아니다. 수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펜타닐은 신종 마약으로 떠오르며 오남용 및 중독 사례가 급증하는 추세다. '마약성 진통제'로 분류돼 의사 처방전이 있으면 구입이 가능한데, 2018년 89만여 건이었던 한국 내 펜타닐 처방은 2021년 148만 건으로 67% 증가했다. 이 중에는 마약 투여 목적으로 가짜 처방전을 활용해 구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정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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