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총리 "실패 예정된 길 갈 수 없어"...'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건의

입력
2023.03.29 19:00
수정
2023.03.29 22:0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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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농민 보호 위해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간곡히 요청"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공식 건의했다. 아울러 대국민담화까지 발표하며 개정안의 부당성을 적극 설파하는 여론전을 폈다. 후폭풍을 최소화하려는 이 같은 노력에 이어 윤 대통령이 내달 4일 국무회의에서 취임 후 첫 거부권을 행사할지 주목된다.

한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양곡관리법은 우리 국민이 쌀을 얼마나 소비하느냐와 상관없이 농민이 초과 생산할 쌀을 정부가 다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다"라며 "정부는 쌀 산업의 발전과 농업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대통령께 건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실패가 예정된 길로 정부는 차마 갈 수 없다"면서 "문제가 많은 법률안에 대한 행정부의 재의요구는 올바른 국정을 위해 헌법이 보장한 절차"라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양곡관리법이 왜 문제인지 조목조목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3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넘게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한 총리는 △시장 수급조절 기능을 마비시키고 △연간 1조 원 이상의 재정부담이 예상되며 △식량안보 강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포퓰리즘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농업과 농촌, 농민의 삶과 직결된 일로 정치적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한 총리의 '작심비판'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위한 명분쌓기용 성격이 짙어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틀 전 한 총리와 주례회동에서 양곡관리법 대응과 관련해 "긴밀한 당정 협의를 통해 의견을 모아달라"고 주문했다. 거부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하며 당정이 함께 대국민 설득 작업에 나서달라는 취지로 해석됐다.

이에 당정은 한 총리의 담화에 앞서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양곡관리법 처리 방안을 논의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법안의 폐단을 막고 국민과 농민들을 함께 보호하기 위해서는 헌법상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을 행사해달라고 간곡하게 요청드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결단을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양곡관리법은 다시 국회로 송부된다. 해당 법안을 다시 통과시키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국민의힘 의석이 115석인 만큼 재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민주당은 새 개정안 재발의를 예고한 상태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양곡관리법은 대한민국 쌀값 정상화법"이라고 반박하며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추진을 반대하는 여론이 절반 이상이다. 국민 목소리를 끝내 거부한다면 대통령의 본분을 저버린 무책임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기자회견을 열고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쌀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정부·여당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이라며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의 해임을 촉구했다.

김민순 기자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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