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별 비용, 항목별 인건비까지...정보 빠져나가면 어쩌나"...미국 반도체법 요구 사항에 당황한 업계

입력
2023.03.28 19:00
5면
구독

미국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 시 요구 자료 예시 공개
"적어 내라는 요구 내용 너무 상세... 정보 유출 우려"

지난해 5월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보고 있다. 평택=연합뉴스

지난해 5월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보고 있다. 평택=연합뉴스


미 상무부가 27일(현지시간) '반도체과학법' 지원금을 신청하려는 기업이 제출해야 하는 자료를 예시를 들며 구체적으로 안내하자 국내 반도체 업계에선 미국 측이 요구하는 내용이 영업 기밀에 해당하며 지나치게 구체적이라며 걱정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상무부가 공개한 예시를 보면, 반도체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은 예상되는 이익과 비용, 이를 산출하는 방식 등을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해야 한다. 이에 따라 기업은 반도체 공장의 △웨이퍼 종류별 생산 능력 및 가동률 △예상 웨이퍼 수율(전체 생산품 중 합격품 비율) △필요 재료 구매 비용 △인건비 △연구개발비 등 생산에 필요한 각종 데이터를 내놓아야 한다.

정부에 따르면, 이날 발표된 내용은 지난달 28일 큰 틀에서 공개한 신청 절차를 예시 양식 형태로 또다시 안내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 양식을 못 맞추면 보조금을 못 준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신청 양식을 안내한 것으로 강제 사항보다는 고려 요소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 기업 입장을 잘 듣고 미국에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우리 정부와 기업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깐깐한' 심사 절차를 구체적으로 예고한 것 자체를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수율과 가동률 등은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영업 기밀에 해당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시를 보면 반도체 재료가 되는 소재별로 비용을 산출하고, 인건비도 직원 유형별 고용 인원을 입력하라고 하는 등 상세한 내용이 담겼다"면서 "기업 내에서조차 잘 공유하지 않는 생산 전략 등 중요 정보가 노출될 수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미 상무부는 기업의 보조금 신청을 첨단 반도체 공장은 31일부터, 구형 반도체 및 후공정(패키징) 시설은 6월 26일부터 받는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신규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추가 건설도 검토 중인 삼성전자는 신청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후공정 공장 신설 계획을 밝힌 SK하이닉스는 일단 상황을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업계는 그동안 반도체법상 지원금을 받은 한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에 우려를 집중해 왔다. 가드레일 조항의 경우 21일 공개된 세부규정이 현재 설비 수준의 운영을 가능하도록 유지하면서 "최악은 피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정보 제출 요청과 초과 이익 환수 등 조건은 보조금 신청에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인현우 기자
이윤주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