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도 자격도…단편물 틀 깨는 출판사들

입력
2023.03.29 15:00
수정
2023.03.29 18:2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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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출간 폭 넓힌 기획들
온라인 공개 후 출간, 보편화
'위픽' 단편 딱 1편만 담은 책
미등단 작가 함께, 단편집 '림'

위즈덤하우스가 낸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은 단 1편의 단편으로 1권의 책을 구성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위즈덤하우스가 낸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은 단 1편의 단편으로 1권의 책을 구성했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단편소설 출간 시장에도 새로운 기획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문학 인기의 큰 축인 정세랑, 김초엽, 천선란 등 젊은 작가의 팬덤을 눈여겨본 출판사들이 새로운 작가, 새로운 이야기에 목마른 독자들을 겨냥한 이색 기획을 내놓고 있다. 한 작가의 단편소설을 묶는 소설집, 정기 문예지 발표 등 기존의 출간 방식과는 다른 식으로 젊은 독자들을 끌어오는 게 이들의 전략이다.

대표적인 시도가 위즈덤하우스의 '위픽(WEFIC)'이다. 이달 8일 첫 선을 보인 '위픽'은 단 한 편의 단편소설로 한 권의 책을 구성했다. 200자 원고지 100~200매 분량의 단편 하나로, 책 한 권이 얇은 다이어리 정도 크기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은 "출판사가 운영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한 젊은 독자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면서 "기존 출판계에서는 장편, 단편, 소설집과 같은 기준이 명확했지만 젊은 독자들에게 그런 구분이 중요하지 않았고 이야기 자체가 매력적인지가 관건이었다"며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위픽 시리즈는 구병모 '파쇄', 이희주 '마유미', 윤자영 '할매 떡볶이 레시피', 박소연 '북적대지만 은밀하게', 김기창 '크리스마스이브의 방문객' 등 다섯 작품을 시작으로, 매월 둘째 수요일에 4종씩 출간, 1년 동안 50권을 낼 계획이다.

출판사 열림원도 비슷한 시기에 '림(LIM) 젊은 작가 단편집' 첫 편을 선보였다. 시리즈 타이틀인 '림'(林·수풀)은 경계 없는 이야기의 숲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설의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작가의 자격 기준도 없다. 따라서 신춘문예나 공모전 등 기존 제도를 통해 등단 절차를 밟지 않은 작가들에게도 문호가 열려있다. 김민지 열림원 책임편집자는 "보통 등단한 지 시간이 좀 흘렀거나 인지도가 있는 작가를 중심으로 앤솔로지 등이 기획돼 출판된다"며 "반면 (림은) 미등단 작가를 포함해 신인 작가들에게 지면을 연 것이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첫 단편집 '쿠쉬룩'에는 서윤빈, 서혜듬, 설재인, 육선민, 이혜오, 최의택 작가와 전청림 문학평론가 등 모두 첫 작품을 발표한 지 5년이 넘지 않은 작가들이 참여했다. 특히 천선란 작가가 추천한 서혜듬 작가는 이번이 첫 소설 발표다. 봄호를 시작으로 1년에 2차례 펴낼 예정이다.

열림원의 '림 젊은 작가 단편집'은 활동 경력 5년 이하의 작가들을 위한 창작 공간이다. 열림원 제공

열림원의 '림 젊은 작가 단편집'은 활동 경력 5년 이하의 작가들을 위한 창작 공간이다. 열림원 제공

출판계가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단편 기획을 시도하는 데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스타 작가들은 4, 5년 치 출간 일정이 차 있는 상태라 새로운 작가 발굴로 활로를 찾으려는 것이다. 첫 작품에는 구병모, 천선란 등 기획 홍보를 견인할 작가들을 앞세웠지만 전반적으로 신인급 작품들을 키워간다는 게 두 출판사의 계획이다. '위픽'에는 시인(이소호)과 논픽션 작가(김원영, 정혜윤)의 첫 소설이 포함됐고, '림'은 투고도 받을 예정이다. 젊은 문학팬들에게 빠르게 신예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장편보다는 단편을 선택했다.

온라인 공개 후 책으로 엮는 등 온오프라인 경계를 없앤 점도 특징이다. 열림원은 이달 문을 연 문학웹진 '림'에 연재된 작품 일부를 단편집으로 내놓는다. 위즈덤하우스 역시 지난해 11월부터 자체 웹에 매주 단편소설을 공개하는 '위클리 픽션' 프로젝트를 '위픽' 출간으로 연결했다. 박태근 본부장은 "해외 문학상 수상도 많고 팬덤 있는 작가가 매년 배출되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면서 "출판사 플랫폼에서 처음 소설을 쓴 작가 중에 성공 사례가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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