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에 전술핵 배치" 선언 푸틴, '미국식 핵공유' 협박으로 '되치기'

입력
2023.03.26 18:22
수정
2023.03.26 18:34
1면

지난달 뉴스타트 참여 중단 이어 국외 핵 배치 카드
벨라루스, 나토와 국경 맞대 서방 경고로 해석
갈수록 발언 수위 높아져...미국 "핵 사용 징후 없어"

지난해 12월 20일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회담하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민스크=UPI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0일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회담하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민스크=UPI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동맹국인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겠다고 위협했다.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는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만큼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서방에 대한 직접적 경고로 해석된다.

미국과 상호 핵사찰과 정보 공유를 약속한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ㆍ뉴스타트)’ 중단을 지난달 일방적으로 선언한 데 이어 러시아가 핵 위협 수위를 잇달아 끌어올리고 있다.

푸틴 "미국도 동맹에 핵 배치하잖아"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AP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국영TV 러시아24와의 인터뷰를 통해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기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 결정했다"고 밝혔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군사기지 역할을 해왔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를 벨라루스로 이전하는 게 아니라 미국처럼 핵비확산조약(NPT)을 어기지 않으면서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나토 회원국인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등 6개국 공군기지에 B61 계열 전술핵폭탄을 배치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미국처럼 '나토식 핵공유'를 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은 나토와 협의해 전투기 등에 전술핵폭탄을 장착해 '합법적으로' 발사할 수 있다.

러시아는 1996년 구소련 3개국(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에서 핵무기를 완전 철수한 이후 러시아 영토 안에만 핵무기를 보유 중이다. 오스트리아 빈 군축·비확산센터(VCDNP)의 니콜라이 소콜 선임연구원은 "러시아는 영토 밖에 핵무기를 두지 않았다는 점을 자랑으로 여겨 왔다"며 "벨라루스에 핵을 배치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변화"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미국보다 많은 전술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틴 대통령은 "핵 통제권은 러시아가 행사한다"면서 "(중단거리 지대지 핵무기 운반 체계인)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항공기를 벨라루스에 이미 주둔시켰고, 올해 7월 1일까지 전술핵무기 저장고를 완공할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 약 3개월의 말미를 국제사회에 통보했다.

푸틴 대통령이 핵 버튼을 실제로 누를지에 대해선 여전히 관측이 엇갈린다. 현재로선 협박용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스 크리스텐스 미국과학자연맹(FAS) 국장은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해도 군사적 효용은 그리 크지 않다"며 "서방의 무기 지원을 막으려는 푸틴의 게임"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실제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열화우라늄탄을 지원키로 한 것을 문제 삼았다. 다만 국제 반핵단체인 핵무기폐기국제운동 측은 "전쟁 중에는 오판 가능성이 커진다. 핵확산은 재앙을 초래할 위험을 높인다"고 우려했다.

잦아지는 푸틴 핵 협박... 미국은 '신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모스크바에서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미국과의 핵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모스크바에서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미국과의 핵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전세가 기운 지난해 말 이후 러시아는 핵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국정연설에서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고, 이는 국제사회의 핵 통제를 따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도 최근 "핵 충돌 위험이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에도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러시아 발표를 인지했으며, 그 의미를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의 전략적 핵 태세를 수정할 이유를 찾거나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징후를 보지 못했다”며 “나토 동맹의 집단 방어에 계속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도 같은 입장을 담은 성명을 냈다.

민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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