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고수' 마크롱에 국민 분노 더 커졌다... “109만 명 시위”

입력
2023.03.24 20:00
수정
2023.03.24 20:22
10면
구독

23일 9차 총파업... '의회 패싱' 후 첫 집회
전국서 "제발 국민 품으로!" 반대 목소리
영국 국왕 찰스 3세 파리 방문 일정 취소
457명 체포·903건 화재... "도시가 마비"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민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민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프랑스 전역이 23일(현지시간) 분노로 들끓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거센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밀어붙이는 연금 개혁을 저지하려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정부 측 집계로 시위 인파는 100만 명 이상이었고, 집회 측 추산으로는 300만 명을 훌쩍 넘어섰을 정도다.

특히 올해 1월부터 이어진 총파업과 시위에도 마크롱 대통령이 타협은커녕, 연금 개혁 법안 사수를 위해 의회 표결을 생략하는 '꼼수'까지 동원하자 시민들의 반발도 격화하고 있다. 일부 시위대가 건물과 집기를 마구 부수는 등 과격 시위도 잇따르는 모습이다. 대중교통 등 도시의 주요 기능이 마비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의 '직진'을 막을 합법적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다. 시위가 사실상 '최후의 수단'인 탓에 시민들도 중단하지 않을 태세다. 프랑스 사회의 '대혼란'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거리에 퍼진 '마크롱 규탄'…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이날 제9차 연금 개혁 반대 시위는 프랑스 250여 곳에서 열렸다. 지난 16일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가 연금 개혁 법안의 의회 표결을 건너뛰고 법안을 가결한 뒤, 처음으로 8개 주요 노동조합이 공동 개최한 시위였다. 참여 인원은 내무부 추산 108만9,000명, 노동총동맹(CGT) 추산 350만 명가량으로 집계됐다. 수도 파리에 가장 많은 인파(내무부 추산 11만9,000명, CGT 추산 80만 명)가 몰렸다.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민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시민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거리는 '마크롱 규탄' 함성으로 가득 찼다. 연금 개혁 저지 집회에 처음 참가한 건축가 플뢰르 모랭(28)은 "마크롱 정부가 의회를 거치지 않고 법안을 통과시켜 분노가 커졌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22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시위가 연금 개혁 법안을 철회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던 마크롱 대통령 발언은 시민들을 더 자극한 듯했다. 버스 운전사 나디아 벨훔(48)은 AP통신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국민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마크롱 대통령을 직격했다.

마비된 도시, 증가한 폭력... 28일 10차 시위

프랑스 언론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총파업으로 프랑스 도시 곳곳은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철도공사(SNCF)와 파리교통공사(RATP) 등은 열차 운행을 대폭 축소했다. 파리 오를리 공항에선 항공편 30%가 취소됐다. 정유소 파업으로 기름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도시도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 전역에서 학교가 문을 닫기도 했다. 파리의 주요 관광지인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 등은 폐쇄됐다. 쓰레기 수거 업체가 2주 넘게 파업하면서 파리에만 1만 톤 이상의 쓰레기가 거리를 점령했다. 심지어 외교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영국연방 국왕 찰스 3세가 26~29일 파리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양국 합의를 거쳐 취소했다.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에마뉘엘 마크롱의 연금 개혁 반대 집회에 참석한 시위대가 최루탄 연기에 휩싸여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에마뉘엘 마크롱의 연금 개혁 반대 집회에 참석한 시위대가 최루탄 연기에 휩싸여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일부 시위대는 폭력적인 모습도 보였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파리에서는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한 청년들이 버스 정류소와 상점 등을 부수고, 경찰을 공격했다. 쓰레기통이나 신문 가판대 불을 지르는 화재는 903건 발생했다. 보르도 시청 정문과 그 주변도 불에 탔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평화 시위를 했던 대다수 시민과 폭력 시위대를 구분하며 "경찰 공격이 목적인 극좌파가 있다"고 맹비난했다.

경찰이 시위대 해산을 위해 최루탄·물대포 등을 동원하자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내무부는 24일 오전 "프랑스 전역에서 457명이 체포됐고, 441명의 경찰 및 헌병이 부상을 당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경찰의 시위 진압이 지나치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노조는 28일 10차 총파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