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여자들, 절망 끝에 연대

입력
2023.03.24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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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경의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
난임 고민 안은 여자들의 각기 다른 사연
육체·정신적 고통 공유, 응원하는 관계로
난임 사회·경제적 문제임을 거듭 드러내

소설 '헬로 베이비'는 각기 다른 고민을 안고 난임병원에서 만나 여성들의 삶을 다뤘다. 게티이미지뱅크

소설 '헬로 베이비'는 각기 다른 고민을 안고 난임병원에서 만나 여성들의 삶을 다뤘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8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저출생'이 국가적 문제로 꼽힌 지 오래지만 역설적이게도 난임에 대한 관심은 낮다. 난임 진단을 받은 사람이 전국적으로 연간 25만 명에 달하고, 난임 시술을 받는 사람이 14만 명(2021년 기준)에 이른다. 아기를 낳고 싶어 하지 않는 인구가 늘어나는 동안 반대로 아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난임은 비교적 소외된 주제이고 심지어 "난임휴가에 출산·육아휴직까지 다 쓰고. 애 낳는 게 벼슬이냐"는 비아냥까지 듣는 게 현실이다.

2014년 등단한 김의경(45) 작가의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는 난임이란 공동의 고민을 안은 여성들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앞서 장편 '콜센터'(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소설집 '쇼룸'에서 사회문제를 정면에 내세웠던 작가는 이번에도 과감한 화두를 던졌다. 소설은 국내 최고 난임전문병원 '아기천사병원'이 배경이다. 제목 '헬로 베이비'는 이곳에서 만난 여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털어놓는 온라인 단체대화방 이름이다. 다양한 직업군의 난임 여성들의 사연이 옴니버스처럼 이어진다.

2014년 장편소설 ‘청춘파산’으로 등단한 김의경 작가는 2018년 장편 '콜센터'로 제6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쇼룸’과 산문집 ‘생활이라는 계절’을 냈다. 은행나무 제공

2014년 장편소설 ‘청춘파산’으로 등단한 김의경 작가는 2018년 장편 '콜센터'로 제6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쇼룸’과 산문집 ‘생활이라는 계절’을 냈다. 은행나무 제공

인물들의 처지는 각기 다르다. 변호사 '혜경'은 일하느라 마흔이 넘어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지만 남편의 정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검사 결과지를 받고 난임병원에 다니고 있다. 혜경과 비슷한 나이의 '문정' 부부는 정자·난자에 특별한 이상은 없지만 고령인 나이 자체가 임신 확률을 크게 떨어트리는 상황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결혼보다 아이를 원하지만 국내에서 미혼 여성은 정자 기증을 받을 수 없어 일단 난자 냉동을 결심한 수의사 '소라'도 대화방 멤버 중 한 명이다. 소설은 난임이 사회·경제적 문제임을 거듭 드러낸다. '문정' 부부가 마흔 전에 "아기는 언감생심"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였다. 작가인 남편의 소설 드라마 판권이 팔린 후에야 아기를 갖기로 한 것이다.

난임을 향한 부정적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건 주로 여자들이다. 난임의 원인과 상관없이 시댁·친정 부모님들의 압박은 여자에게 향한다. 직장 내에서도 눈치도 더 봐야 한다. 임신의 주체인 여자가 치료에 들여야 하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

난자 채취를 하고 4인실 병실에 입원한 '문정'은 휴가를 썼는데도 노트북을 꺼내 놓은 병실 내 '동지'들을 만난다. "유례없는 저출산 시대에 전통적인 가치에 매달리는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인식될까 봐 상사에게 난임치료 사실을 밝히지도 못한 채로. 9주 차에 계류유산한 '지은'은 임신도 유산도 모두 회사에는 비밀로 했다. "애 낳기도 전에 저 지랄이니 애 들어서면 큰일 날 듯." 여초 회사이고 기혼자도 많은 회사지만 사내 익명게시판에는 난임휴가를 사용하는 선배를 저격한 이런 비난이 쏟아지는 분위기라서다.

헬로 베이비·김의경 지음·은행나무 발행·204쪽·1만4,000원

헬로 베이비·김의경 지음·은행나무 발행·204쪽·1만4,000원

작가는 여성이 난임 치료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남편의 무심한 태도에 베이고 유난스럽게 아이를 욕심낸다는 식의 비아냥에 찔린 상처들. 찰나의 희망 후 깊은 절망을 반복하며 지쳐가는 모습도.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된 작품이라 더 핍진하게 느껴지는 것일 테다. 난임병원을 2년 동안 다녔다고 밝힌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고통과 눈물, 설렘이 뒤범벅된 다채롭고 생생한 이야기"가 임신 이전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15년 만에 난임치료 중단을 선언한 '정효'가 1년 만에 갑자기 출산 소식을 전하며 서사는 반전을 거듭한다. 우여곡절 끝에도 대화방 멤버들은 맞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헬로 베이비 단톡방은 모두가 임신하는 날 폭파될 예정"이라고 했지만 그들의 연대는 시한부가 아니다. 책을 덮고 나면, 어쩌면 '헬로 프렌즈' 정도가 적당한 이름인 듯한 그 대화방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든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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