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연금개혁 '일단' 살렸지만… 더 거칠어진 반대

입력
2023.03.21 20: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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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 불신임안, 하원서 부결... 입법 마무리 수순
"위헌 여부 따져야" "법안 공포 말라" 반발 커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6일 프랑스 파리 외무부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6일 프랑스 파리 외무부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치 생명을 걸고 밀어붙인 연금 개혁 법안이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정년 2년 연장'을 통해 근로 기간을 늘리고 연금 수령 시기는 늦춰 거센 반발을 부른 이 법안을 의회 입법 절차 없이 강행 처리한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이 하원에서 부결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해당 법안은 의회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됐다.

프랑스 사회의 저항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마지막 관문'인 대통령의 법안 서명을 막기 위해 △위헌 진정 △국민투표 △철회 요구 △과격 시위 등 모든 수단이 총동원되고 있다. 그럼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안에 연금개혁을 마무리할 기세를 보이고 있어 일촉즉발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내각 '가까스로' 생존… 연금개혁 법안도 국회 통과로 간주

20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에서 표결에 부쳐진 마크롱 정부 내각 불신임안 2건은 모두 부결됐다. 내각 불신임안이 가결되려면 재적 577석 중 공석 4석을 뺀 573석의 과반인 287명이 찬성표를 던져야 했다. 그러나 중도 성향의 자유·무소속·해외영토(LIOT) 그룹과 좌파 연합 뉘프(NUPES)가 공동 발의한 불신임안에는 278명이 찬성해 9표가 모자랐다.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이 발의한 불신임안엔 94명만 찬성했다. 마크롱 정부 내각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가 20일 수도 파리 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회의에 출석해 연금개혁 필요성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가 20일 수도 파리 의사당에서 열린 하원 회의에 출석해 연금개혁 필요성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이로써 연금개혁 법안도 '국회 통과'의 효력을 갖게 됐다. 해당 법안은 현행 62세인 정년을 2030년까지 64세로 연장하고, 연금 100% 수령을 위해 기여해야 하는 근로 기간도 기존 42년에서 2027년까지 43년으로 늘린다는 게 골자다. 아울러 △근로 기간을 늘리는 대신 올해 9월부터 최저 연금 상한을 최저임금의 85%로 10%포인트 올리고 △경제 활동을 일찍 시작하면 조기 퇴직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이들에겐 추가 혜택을 지급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를 통해 연금 재정 고갈을 막을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참에 연금개혁을 완성하겠다는 태세다. 21일 보른 총리 및 관계 부처 장관, 집권당 '르네상스' 소속 야엘 브라운 피베 하원의장 등과의 회동, 제라드 라르셰 상원의장 및 피베 의장과의 오찬 일정을 줄줄이 잡았다. 연금개혁법 공포 전 마무리 협의로 여겨졌다.

프랑스 파리 하원에서 20일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64세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에 반대한다' '국민투표로 결정하자' 등 메시지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하원에서 20일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64세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에 반대한다' '국민투표로 결정하자' 등 메시지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철회 요구ㆍ위헌 검토ㆍ국민투표… 총력반대 넘어야

'연금개혁 반대' 목소리는 한층 커지고 있다. 당장 '법안을 철회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야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법을 공포해선 안 된다" "연금개혁을 막기 위해 계속 거리에서 싸우자"고 외쳤다. 노동조합은 '더 거친 저항'을 예고했다. 23일 총파업이 예정된 가운데, 프랑스 전역에선 이미 하루도 빠짐없이 자발적 시위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집회도 점점 과격화 양상을 보인다.

법안 내용 및 추진 과정의 위헌성을 따지는 절차도 개시됐다. 야당 의원들이 헌법위원회에 진정을 낸 것이다. 보른 총리가 연금개혁 법안의 국회 표결 절차 생략을 위해 헌법 49조 3항을 사용한 게 적법했는지가 쟁점이다. 9명으로 구성된 헌법위원회는 1개월 안에 사안을 검토해야 한다.

국민투표도 저지 수단으로 고려되고 있다. 다만 국민투표가 성사되려면 헌법위원회 판단 이후, 유권자 10%(약 487만 명)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개혁 드라이브'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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