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네컷이 일상인 '포토 프레스' 세대, 이제 '프세권'에서 모인다

입력
2023.03.24 10: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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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 넘어 취향까지 사진으로 인화하는 1020
연예인과 함께 찍은 듯한 인생네컷 프레임 만들고
프린팅박스에서 나만의 '한정판 굿즈' 뽑아서 나눠

포토부스 열풍의 첫 세대인 인생네컷이 지난달 인기 캐릭터 '최고심'과 협업한 프레임과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사진은 한모델이 '최고심' 프레임으로 사진을 촬영한 모습. 인생네컷 제공

포토부스 열풍의 첫 세대인 인생네컷이 지난달 인기 캐릭터 '최고심'과 협업한 프레임과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사진은 한모델이 '최고심' 프레임으로 사진을 촬영한 모습. 인생네컷 제공

지난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골목. 팔에 ‘23’(학번)이 적힌 학과 점퍼를 입은 대학생 3명이 한 카페에서 빠져나온다. 이들은 즉석사진 스튜디오 부스로 들어가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촬영했고, 뽑힌 사진을 서로 나눠 가졌다. 인화한 사진을 스마트폰으로도 찍어 서로의 계정을 태그한 이들은 자신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이 부근 2개 블록 안에 이런 즉석사진 스튜디오가 3개나 있다.
‘사진을 찍고 인화하기’가 1020세대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스마트폰 촬영에 그치지 않고 실물 사진을 뽑아 소장·전시하는 욕구가 커진 이들을 ‘포토 프레스(Photo-press·Photo와 Express의 합성어) 세대’라고 부른다. 스스로를 찍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좋아하는 연예인과 함께 있는 것 같은 프레임으로 사진을 찍거나 포토카드를 뽑기 위해 사진 인화가 가능한 자판기를 찾아다닌다. 사진을 '덕질'과 결합하는 세대다.

좋아하는 연예인과 함께 찍은 듯... 인생네컷의 진화

그룹 빅톤의 팬이 멤버 수빈 생일을 기념하며 네 컷 프레임을 만든 모습. 팬들은 자체 제작 프레임을 SNS상에서 공유하며 멤버의 생일을 함께 기념한다. 가수 얼굴은 사진 저작권 관계로 모자이크 처리했다. 트위터 'ddubi_45' 캡처

그룹 빅톤의 팬이 멤버 수빈 생일을 기념하며 네 컷 프레임을 만든 모습. 팬들은 자체 제작 프레임을 SNS상에서 공유하며 멤버의 생일을 함께 기념한다. 가수 얼굴은 사진 저작권 관계로 모자이크 처리했다. 트위터 'ddubi_45' 캡처


뮤지컬 배우 박은태의 팬이 그의 사진이 포함된 네 컷 프레임을 만든 모습. 팬들은 자체 제작 프레임을 SNS상에서 공유한다. 배우 얼굴은 사진 저작권 관계로 모자이크 처리했다. 트위터 'owol353' 캡처

뮤지컬 배우 박은태의 팬이 그의 사진이 포함된 네 컷 프레임을 만든 모습. 팬들은 자체 제작 프레임을 SNS상에서 공유한다. 배우 얼굴은 사진 저작권 관계로 모자이크 처리했다. 트위터 'owol353' 캡처

좋아하는 연예인과 함께 인생네컷을 찍을 수 있다면 어떨까. 포토 프레스 세대는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이들은 네 컷으로 나뉜 프레임 안에 자신의 ‘최애’ 인물 사진을 배치하는 등 프레임을 직접 디자인하고 SNS에 올린다. 해당 프레임을 ‘인생네컷’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앱) 등에 등록하면 손쉽게 원하는 프레임을 만들 수 있다.

연예인의 생일이 다가오면 팬들은 포토부스 한 곳을 대여하거나 카페에 인화 기계를 들이는 등의 방식으로 생일 축하 공간도 마련한다. 직접 만든 생일 축하 프레임으로 사진을 찍으며 연예인의 생일을 기념하는 방식이다.

포토부스 열풍의 첫 세대인 인생네컷이 지난달 인기 연예인 '다나카'와 협업한 포토부스를 선보였다. 사진은 지난달 서울 더현대에서 다나카 포토부스를 이용하기 위해 팬들이 줄 서 있는 모습. 독자 제공

포토부스 열풍의 첫 세대인 인생네컷이 지난달 인기 연예인 '다나카'와 협업한 포토부스를 선보였다. 사진은 지난달 서울 더현대에서 다나카 포토부스를 이용하기 위해 팬들이 줄 서 있는 모습. 독자 제공

포토 프레스 세대를 겨냥한 포토부스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포토부스 시장의 개척자는 2017년 등장한 즉석사진 체인점인 ‘인생네컷’. 이후 ‘포토이즘’ ‘포토 그레이’ 등 유사 체인점들이 속속 등장했다. 인생네컷은 초기에는 기본 프레임만 제공했지만 지금은 최고심, 다나카, 그룹 스테이시 등 1020 연령대에 인기가 많은 캐릭터나 연예인과의 협업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 포토이즘 역시 그룹 더보이즈, 트와이스 등과 협업한 프레임을 선보였다. 포토이즘의 더보이즈 프레임으로 사진을 찍은 대학생 박수정(22)씨는 “좋아하는 연예인과 함께한 듯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게 흥미롭다”며 “결과물뿐만 아니라 연예인의 포즈를 따라 해 보는 촬영 과정 자체도 즐겁다”고 말했다.

‘프세권’으로 모여라… 무인 인화기로 ‘한정판 굿즈’ 생산

편의점 'CU'에 프린팅박스가 입점된 모습. 지난해 1월 첫 도입된 프린팅박스는 CU가 운영 중인 20여 종의 생활서비스 중 택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 주 고객층은 1020세대로, 전체의 70%가량을 차지한다. CU 제공

편의점 'CU'에 프린팅박스가 입점된 모습. 지난해 1월 첫 도입된 프린팅박스는 CU가 운영 중인 20여 종의 생활서비스 중 택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 주 고객층은 1020세대로, 전체의 70%가량을 차지한다. CU 제공

아이돌 포토카드나 스티커 등 '굿즈'를 직접 만드는 것에도 익숙한 이들은 사진 인화를 굿즈 제작에도 활용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들 사이에서 주로 쓰였던 건 '스냅스' '퍼블로그' '오프린트미' 등 사진 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들이었다. 그러나 옵션 선택 과정이 복잡하고 번거로울 뿐더러 주문 이후 배송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포토 프레스 세대는 좀 더 편리하게 서비스를 받기 위해 ‘프린팅박스’로 몰려들고 있다. 프린팅박스란 사진 인화가 가능한 무인 기계로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곳곳에 설치돼 있다. 프린팅박스 앱에 인화를 원하는 사진을 업로드하고 인쇄 요청을 하면 24시간 동안 유효한 코드가 발급되는데, 이를 기계에 인식시키면 바로 인화된 사진을 받아볼 수 있다. 프린팅박스를 입점시킨 편의점 CU에 따르면, 프린팅박스 이용자 비중은 10대 27.7%, 20대 43.1%로 1020 연령대가 전체의 70%가량을 차지한다.

만화 '슬램덩크'의 캐릭터를 일러스트로 그려낸 A씨가 자신의 그림을 인화하기 위해 프린팅박스 애플리케이션으로 인화 주문을 넣을 때의 화면. 트위터 계정 bobo_mimi 제공

만화 '슬램덩크'의 캐릭터를 일러스트로 그려낸 A씨가 자신의 그림을 인화하기 위해 프린팅박스 애플리케이션으로 인화 주문을 넣을 때의 화면. 트위터 계정 bobo_mimi 제공


만화 '은혼'의 팬인 B씨가 직접 그린 캐릭터 그림을 프린팅박스를 이용해 포토카드로 인쇄한 모습. 독자 제공

만화 '은혼'의 팬인 B씨가 직접 그린 캐릭터 그림을 프린팅박스를 이용해 포토카드로 인쇄한 모습. 독자 제공

프린팅박스가 설치된 곳 인근을 ‘프세권’(프린팅박스와 역세권의 합성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SNS상에서는 프세권 거주자를 찾는다며 포토카드 등 인화를 부탁하는 게시물이나 프세권인 덕분에 사진 인화가 편하다는 후기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슬램덩크’의 팬인 20대 초반 박수연(가명)씨도 직접 그린 슬램덩크 일러스트를 프린팅박스로 뽑아 슬램덩크 팬들과 나누는 게 취미다. 박씨는 “손쉽게 만든 굿즈를 팬들에게 주면서 기쁨을 나눌 수 있어 창작자로서 즐겁다”고 말했다. 만화 ‘은혼’의 팬인 20대 중반 이영진(가명)씨도 캐릭터를 직접 그린 뒤 포토카드로 뽑아 소장한다. 이씨는 “발행 시간이 24시간으로 정해져 있어 ‘한정판 굿즈’라는 기분이 들어 재밌다”며 “많을 때는 하루에 몇만 원씩도 프린팅박스에 쓴다”고 했다.

스티커 사진 세대보다 적극적… “나 자신 넘어 취향도 표현”

21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셀프 포토부스에서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홍인기 기자

21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셀프 포토부스에서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홍인기 기자

이들은 왜 사진 인화를 덕질에 활용할까. 포토 프레스 세대는 “나 자신과 취향을 동시에 드러낼 수단으로 적절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화된 사진은 좋아하는 캐릭터나 연예인에 대한 콘텐츠인 동시에 이를 전시·소장하는 ‘자신’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 캐릭터인 최고심 인생네컷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모(19)양은 “인생네컷 한 장이면 ‘최고심을 좋아하는 사람’이자 ‘예쁘게 꾸며 입고 포토부스에 놀러 갔던 사람’이라는 것까지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무한 생산되는 콘텐츠에 익숙했던 이들에게 자원이 한정적인 아날로그 굿즈는 희소해서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이재흔 대학내일20대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무한한 디지털 자원과는 반대로 사진, 카드, 종이책을 소장하는 것이 이들 세대에게는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며 “E북 등 온라인으로 이미 읽은 콘텐츠를 종이책으로 소장하는 모습과도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

포토 프레스 세대의 등장은 얼핏 보면 스티커 사진이 유행하던 2000년대 초반과 유사하다. 과거의 재현이라며 ‘레트로’ 현상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사진을 전시하거나 2차 가공하는 이들의 방식은 개인 소장에 그쳤던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포토 프레스 세대는 SNS 게시의 필수적인 요소로 사진을 활용한다”며 “영상·이미지 콘텐츠에 익숙한 세대인 만큼 이미지 기반의 문화를 새롭게 선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팬 플랫폼 '위버스'를 보유한 하이브 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자본 주체가 굿즈 산업의 우위를 점한 가운데, 포토 프레스 세대가 균열을 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팬덤의 소비 데이터를 보유한 기획사가 굿즈 기획·판매를 주도하는 형태는 팬덤을 자유로운 문화 주체보다는 산업 소비자로 굳히는 경향이 있다"며 "대형 자본이 주류가 된 굿즈 문화 한복판에 스스로 사진을 찍고 굿즈를 만드는 이들의 등장은 유의미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유사한 포토부스와 인화기계가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수석연구원은 "비슷한 포토부스나 프린팅박스가 늘어나면 피로도가 높아진다"며 "1020 세대가 새롭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얼마나 생겨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박상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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