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가 자랐듯 국립창극단 여성 단원들도 성장했다

입력
2023.03.23 14:14
수정
2023.03.23 14:2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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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원작 국립창극단 창극 '정년이'
원작 여성 서사에 2030 여성 관객 열광
소리 실력에 연기력 갖춘 창극단 단원들 열연 돋보여

국립창극단 '정년이'. 국립극장 제공

국립창극단 '정년이'. 국립극장 제공

국립극장 전속 예술단체 국립창극단이 1950년대 여성 국극(모든 배역을 여성 출연자가 맡아서 공연한 창극) 배우들의 성장기를 그린 네이버 인기 웹툰 '정년이'를 창극으로 만든다는 소식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왔다. 여성 소리꾼들이 주축이 된 여성 국극 소재와 창극이 장르적으론 잘 맞지만 137화에 이르는 웹툰에 담긴 방대한 이야기를 2시간 분량으로 축약하고 무대 언어로 전환하는 일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개막한 창극 '정년이'는 뚜껑을 열고 보니 예상대로 각 캐릭터의 세부 묘사가 생략되면서 이야기가 헐거워졌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그리스 비극, 중국 경극, 구전설화 등 다양한 소재를 창극으로 흡수해 온 국립창극단의 내공은 탄탄했다.

배우 김태리 주연의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인 '정년이'는 소리 재능을 타고난 목포 소녀 윤정년과 소리꾼들의 성장과 연대를 그린다. 정년이를 나눠 맡은 이소연과 조유아를 비롯한 국립창극단 단원들은 소리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간 도전적 레퍼토리를 거치며 다져 온 연기 실력을 충분히 발휘해 각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소연의 '정년이'를 관람한 한 관객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년이가 창(唱) 실력 부족을 느껴 소리를 연마하는 장면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리 실력이 압도적'이라는 감상 후기를 남겼다. 이자람 음악감독의 현대적 작창에 속도감 있는 전개, 동성애 코드까지 더해지면서 창극보다는 창작 뮤지컬 같은 인상을 주는 대목도 있었다.

국립창극단 '정년이'. 국립극장 제공

국립창극단 '정년이'. 국립극장 제공

이번 공연의 취지 중 하나는 창극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사실상 명맥이 끊긴 여성 국극을 되돌아보자는 것이었다. 이는 윤정년이 속한 매란국극단이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인 '자명고'를 무대에 올리는 극중극 장면에 반영됐다. 다만 여성 국극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정도의 비중은 되지 못해 온라인상엔 추후 '자명고'만 별도의 공연으로 만들어 달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1950년대 여성 국극은 여성 관객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이들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관습이 뿌리 깊던 시대에 적극적으로 구애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역 배우들에게 해방감과 통쾌함을 느꼈다. 여성 국극을 다룬 이번 공연 역시 유독 20~30대 여성 관객이 많았다. 국립극장에 따르면 티켓 구매 관객 중 여성이 92%였으며, 그중 20대 여성이 40.5%, 30대 여성이 27.6%로 대부분이었다.

'정년이'의 폭발적 인기는 도전적 행보를 거듭해 온 국립창극단 10여 년 역사의 결실이다. 무엇보다 소리 실력과 연기력 모두 갖춘 국립창극단 여성 단원들이 매력을 표출하며 제대로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준 점이 이번 공연의 가장 큰 미덕이다. 공연은 29일까지.

국립창극단 '정년이'. 국립극장 제공

국립창극단 '정년이'. 국립극장 제공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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