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아빠 되려고 달렸다" 베트남 2358㎞ 종주한 한국인

입력
2023.03.19 17:00
수정
2023.03.19 19:2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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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우부터 하노이까지 달린 김병삼씨
"향후 목포-부산-서울-함경도 달리고파"

김병삼씨가 15일 하노이의 한 카페에서 '까마우부터 하노이까지 2,250㎞'라고 쓴 배낭 방수커버를 들고 미소짓고 있다. 그가 실제 뛴 거리는 당초 예상보다 108㎞ 더 긴 2,358㎞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김병삼씨가 15일 하노이의 한 카페에서 '까마우부터 하노이까지 2,250㎞'라고 쓴 배낭 방수커버를 들고 미소짓고 있다. 그가 실제 뛴 거리는 당초 예상보다 108㎞ 더 긴 2,358㎞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베트남 국토는 가늘고 긴 'S'자 모양이다. 인도차이나 반도 끝에 남북으로 구불구불 뻗어있는데 해안선 길이가 3,260㎞에 달한다. 국토 최남단부터 북부에 위치한 수도 하노이까지, 베트남인들도 뛰지 않는 거리를 종주한 부산 출신 한국인 김병삼(59)씨가 최근 베트남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김씨를 최근 하노이에서 만났다.

"자랑스러운 아빠 모습 보여주고파"

김씨의 얼굴은 까맣게 탄 상태였다. 올해 1월 1일부터 이달 11일까지 70일간 베트남 '땅끝 마을’ 까마우부터 하노이까지 2,358㎞를 달린 결과다. 마라도에서 임진각까지(650㎞)를 4번 연속으로 뛴 셈이다.

김씨는 비가 와도 태양이 작열해도 매일 8, 9시간씩 평균 30㎞를 달렸다. 50~60㎞를 달려야 했던 날도 있었다. 밑창이 닳아 신발을 세 켤레 바꿔 신는 사이 75㎏였던 몸무게가 58㎏까지 빠졌다.

베트남 종주를 시작한 지 닷새 째인 올해 1월 5일 찍은 모습. 옷에는 아들에 대한 애정이 담긴 메시지를 적었고, 배낭에는 고향 부산의 2030 엑스포 개최를 기원하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꽂고 뛰었다. 김병삼씨 제공

베트남 종주를 시작한 지 닷새 째인 올해 1월 5일 찍은 모습. 옷에는 아들에 대한 애정이 담긴 메시지를 적었고, 배낭에는 고향 부산의 2030 엑스포 개최를 기원하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꽂고 뛰었다. 김병삼씨 제공

김씨는 왜 베트남에서 마라톤 종주를 했을까. 특별히 거창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라고 했다. 부산에서 요식업을 했던 그는 몇 해 전 가게를 모두 정리하고 전업투자자가 됐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면서 관계가 소원해졌다. 특히 하나뿐인 아들(14)과는 1년 가까이 이렇다 할 대화도 자주 못할 정도로 서먹한 사이가 됐다.

아들에게 아빠가 무언가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게 첫 번째 목표였다. 김씨는 “실망스러운 모습만 많이 보여 준 아빠로서 한 번만이라도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가 20년 취미인 마라톤을 택했다”고 말했다.

낯선 땅 베트남을 선택한 것 역시 아들 영향이 컸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20년 1월 아들과 남부 끼엔장에서 한 달 살기를 했던 게 베트남과의 첫 인연이다. 모든 게 아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란 얘기였다. 그는 아들의 이름이 수 놓인 티셔츠를 입고 뛰었다.

분단된 한반도와 달리 ‘남쪽 끝부터 북쪽 끝까지' 달릴 수 있다는 점 역시 베트남을 선택한 이유였다. 김씨는 “언젠가는 목포에서 부산, 서울을 거쳐 함경북도까지 ‘통일 한국’을 달리고 싶은 마음에서 통일 국가인 베트남을 뛰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의 여정을 대략적으로 나타낸 구글 지도. 실제 경로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

김씨의 여정을 대략적으로 나타낸 구글 지도. 실제 경로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


"달리는 이방인 돕는 베트남인들의 정 느꼈다"

한국에서 풀코스(42.195㎞) 마라톤을 수십 차례 완주했지만, 낯선 땅에서 달리기는 쉽지는 않았다. 구글맵에 의지하려 했지만 인터넷 연결이 잘 되지 않아 ‘하노이’이라고 적힌 도로 표지판만 보고 뛰어야 했던 날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달려도 마을이 나오지 않아 도로 위에서 비상 식량으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배낭을 끌어안고 잠든 날도 부지기수다. 베트남에서도 가장 높고 긴 고갯길인 다낭과 후에 사이 하이반 고개를 넘을 때는 무릎을 다쳐 일주일 넘게 절뚝이기도 했다.

김씨를 달리게 한 건 베트남인들의 친절과 배려였다. 생면부지 이방인인 김씨에게 물과 간식을 아낌없이 줬다. 식당에서 값을 몰래 내 준 사람, 비 오는 날 우비를 챙겨 준 사라도 있었다. 8살 남짓 어린이는 주머니 속 2만동(약 1,000원)을 김씨에게 건넸다. 김씨는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을 응원하고 베풀어주는 모습을 보며 베트남인의 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베트남 일간 뚜오이제 홈페이지에 실린 김씨 관련 기사. 뚜오이제 캡처

베트남 일간 뚜오이제 홈페이지에 실린 김씨 관련 기사. 뚜오이제 캡처

김씨의 종주는 베트남에서 화제가 됐다. 유력 일간지 뚜오이제는 온라인 기사를 통해 그의 여정을 소개했고, 현지 유튜버들도 촬영과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연을 알게 된 베트남인들이 사진과 사인을 부탁하기도 했다.

김씨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흘간의 휴식을 끝으로 16일부터 하노이에서 까마우까지,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번에도 뛰어서다. “한 번 달려 본 길을 왜 굳이 다시 달리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이렇게 답했다. “길 끝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 가는 동안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번엔 경치가 좋은 곳에선 조금 쉬었다 가고 힘들면 걷기도 하려고 한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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